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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늘 진짜 행복합니다/시골의사 박경철

각계♡ 2010. 10. 7. 20:56

지금으로부터 15년전 풍산의 어느 작은 마을이 갑자기 들이닥친 기자들로 웅성거렸다.

 

산에서 버섯을 따다 팔아서 생활하는 이 마을에사는 아주머니 한분이 어느날 모처럼 귀한 버섯을 따는 바람에 시장에 내다 팔지않고 동네 사람들에게 조금씩 팔았다, 그 버섯을 산 분들중에는 이장댁도 있었고, 부녀회장집도 있었고, 혼자사시는 노인댁도 있었다.

 

그중에서 사람좋은 이장댁 아주머니는 이 버섯으로 버섯 전골을 한냄비 가득 끓여 이웃분들을 초대했다.

 

초대받은 분들과 이장댁 식구들까지 열 댓명이 평상에 앉아, 모기불을 피워놓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동안 인심좋은 이장댁 아주머니는 고기국물로 펄펄끊기 시작하는 국냄비에 버섯을 쭉쭉 찢어 넣고는 우선 마당으로 밥상부터 날랐다.  

 

시골의 좋은 이웃들의 웃음과 정담들이 살갑게 오가는동안 그중의 아주머니 두어분이 이장댁 아주머니를 돕기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서로 손이 바쁜중에 이장댁 아주머니의 " 어이 **댁 간좀 봐, 전골 간이 잘됐나,..!" 라는 소리는 또 누군가의 " 아유,, 형님 솜씨가 어련하시겠어요,, 간은 무슨,, 얼른 내가야지,, 남정네들 기다리가 쓰러지겠어요..!" 라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하얀 쌀밥이 그릇 가득 퍼 올려지고. 열무김치에, 호박,가지,오이 무침에 된장국까지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위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전골 냄비가 올려지자, 누가 퍼줄 겨를도 없이 각자 서로 국자를 들고 자신의 국그릇에 전골을 퍼담았다,

 

사람좋은 이장댁 아주머니는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 아이구 살살 잡숴.. 그러다 입천장 다 벗겨지구만,," 하고 가벼운 농을 친다음, 그제서야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 숫가락 떠서 간을 봤다, " 아유,, 간이 잘 봐졌나 모르겠네..안 짤려나,, 아까 조선간장을 너무 많이 친 것 같은데.."

 

숟가락으로 국믈을 조금떠서 국물을 막 입에 대는 순간, 혀끝이 마비되고 코로는 뜨거운 김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몇사람은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입안으로 흘려넣고 있었다, 이장댁 아주머니는 그순간에도 자기앞으로 국물을 퍼가는 손들을 말리기위해 자기도 모르게 국냄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맨발로 집밖으로 달려나갔다,

 

갑작스럽게 뜨거운 국냄비를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길거리로 달려나가는 이장댁 아주머니를 본 사람들이 당황했다, 이유를 알 겨를도 없이 몇몇 사람들이 뒤를 따라 뛰었다 " 형님 ,, 왜그래요,, 왜 갑자기 냄비를 들고 도망을 가요? 아이고 형님 어디가요? " 이웃 아주머니가 손사래를치며 뒤를 ?고 다른 사람들도 이것저것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엉거주춤 뒤를 따라 일어섰다, 

 

그러나 그순간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중에 먼저 버섯을 그릇에 담은 남자들이 자리에서 그대로 픽,,하고 쓰러졌다,

 

여자들은 남은 사람들이 쓰러진것도 모르고 냄비를 들고 뛰는 이장댁을 따라 달려나갔다,

 

이장댁은 자기가 왜 그 뜨거운 냄비를 들고 뛰었는지모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 못 먹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그냥 냄비를 들고 도망을 친 것이다, 이장댁은 사람들이 뒤쫓아오자 더 힘껏 달아났고, 결국 집에서 몇백미터나 떨어진 초등학교 마당까지 달려간다음 뒤따라 온 사람들이 거리를 좁히자, 그제서야 그 국을 운동장에 쏟아 버렸다,

 

그 와중에도 장난을 치는줄 알고, 숫가락을 들고 뛰어와서 쏟아진 국그릇에 남은 국물을 떠먹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 아이구,, 형님 와 이라능교,, 아무리 장난이지만, 이 아까운 국을 와 이래 다 내버리능교,,?"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서 타박을 하자, 이장댁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가쁜숨을 몰아쉬며 " 아이구 이거 독버섯이데이.. 이거 먹으면 죽는데이..이거 먹으면 죽는데이.. "을 연발했다.

 

사람들이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다들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보니 남자들이 토사물을 쏟아내며 마당에 뒹굴고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비록 그날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건너집 부녀회장댁도, 또 그너머 할머니도, 무려 다섯집이나 같은 시간에 같은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십년을 평화롭게 살아온 풍산의 어느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방송카메라와 신문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장댁은 소중한 큰 아들을 잃었다. 남편은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그길로 10년을 자리에 누웠고 마을에서는 한날한시에 몇 집에서 동시에 상여가 나갔다. 

 


사건은 일파만파가 되었다,

버섯을 딴 이웃은 이웃대로, 집에서 요리를 한 이장댁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한손으로는 죽은 자식을 산에다 끌어 묻고, 한손으로는 남편 수발을 들면서 경찰서로 검찰로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했다,

 

방송사는 이장댁의 코앞에 카메라를 들이댔고, 신문기자는 기자대로 이장댁의 불운을 집요하게 파헤쳤으며, 그와중에 이장댁의 불운은 이리저리 까발려지고, 고의던 아니던 버섯을 딴 이웃은 이웃대로 법의 처벌을 면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장댁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버섯을 판 아주머니를 위해 경찰로 검찰로, 청와대로 마을사람들이 연서를 한 탄원서를 접수하고 그분을 구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어차피 한동네 한식구들인데 아무도 굳이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아프지만 그것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이장댁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인 막내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쳐다보고 살았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자신이 남편과 자식을 그렇게 만든 죄인인것 같아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은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 

 

봄이면 들에 일을 나가고, 여름이면 혼자서 논농사를 지었다,

 

그나마 남은 자식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이장댁이 일을 나가면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지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변을 받아 냈고, 어린딸은 딸대로 학교를 파하면 얼른 집으로 와서 집안일을 챙겼다, 또 딸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벼를 말리고, 고추를 말리고, 깨를 두드려 어머니의 어깨에 실린 짐을 덜어 주었다.

 

다만 딸아이가 말수가 점점 적어지는것이 걱정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리 큰 불행도 그것도 일상이 되는 때가 오는지, 이제 그나마 자리에 누운 남편을 향해 농담도 건네고, 남편도 건네주는 밥을 먹고, 대소변을 받아 낼지언정 그나마 테레비에 연속극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악마는 이장댁을 그대로 두지않고 그녀를 다시 견디기 어려운 시험에 들도록 만들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5학년짜리 막내아들이 머리가 명석해서, 어려운 환경에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도, 매번 전교에서 일등을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던 두 내외에게 차마 견딜 수 없는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났다,

 

다른 아이들 몇 몇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발길질을 했고, 그 아이는 그때 목뼈를 다쳤다,

 

경추의 골절이었다,

 

이장댁은 넋이 나갔고, 남편은 남편대로 충격을 받았다, 이제 농사도 집안일도 남편 수발도 모두 제쳐 놓고 아이를 업고 대구로,서울로, 좋다는 병원은 다 다녀보고, 하다하다 안되서 용하다는 한의원과 침쟁이를 모두 찾아다녔다,

 

그사이 집안일은 풍비박산이나고 딸아이는 아버지 수발과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나마 딸아이가 진중하고 무거운 성격이라 제 아버지가 굶는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동안 논이며 밭이며 가진 재산들이 하나하나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버는 사람도 없이 아이하나 살려보려고 모든 가산을 탕진한 것이다,

 

안방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남편이, 왼쪽에는 아들이 반신불수로 누워있는 기막힌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장댁은 이제 넉넉하던 농사도 다 없어지고, 그나마 남은 텃밭에서나는 채소를 내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야했다, 그래도 이장댁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최소한 내자식 내 아들을 빌어 먹게 하지는 않겠다는 오기나 고집이 오히려 이장댁을 죽지않고 견디게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딸아이는 아들을, 이장댁은 남편을 씻기고 ?인 다음, 각자 밥을 떠먹여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운 방바닥 사이에 죽을 끓여 큰 그릇에 담아 놓아두고, 물과 과자를 작은 그릇에 몇그릇을 중간중간 떠다놓고 딸아이는 학교로 이장댁은 농공단지에 사출공장으로 일을 나갔다,

 

그러면 그나마 온몸이 뒤틀려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몸을 비틀 수는 있는 아들이 손목 사이에 숟가락을끼워 아버지를 떠먹이고 스스로는 죽 그릇에 입을대고 죽을 빨아 먹었다, 그때부터는 반신불수 아들이 반신불수 아버지를 돌보게 된 것이다.

 

두사람이 집에 돌아와보면 온집안에 대소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두사람은 다시 대야에 물을 떠다가 남편과 동생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더 가혹하고 무서운 불행이 먹장구름처럼 이장댁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장댁과 그 딸이 그렇게 서서히 지쳐갈 동안 자리에 누워 대소변을 내놓았던 두남자의 가슴도 아마 갈갈이 찢어졌을게다,

 

의식이 멀쩡한 두 아버지와 아들이 한쪽은 신경이 마비되어 축 늘어진 사지로, 또 한쪽은 강직으로 손발이 비틀려진 사지로 자리에누운 채 똥 오줌을 누어야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견딜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이제 초등학교 5,6,학년 나이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뒤틀어진 손으로 자신의 입에 죽을 떠넣어주는 것을 받아먹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말 그렇게는 살아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들의 사고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아저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해 겨울에 눈을 감았다, 남들은 하기 좋은말로 "그럴바에야 산사람이라도 살게 차라리 잘 가셨다"라고 했는지 몰라도, 이장댁 아주머니의 가슴은 이제 더이상 태울 숫덩어리조차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자기가 죽인 남편이었다.

자기가 부엌에서 직접 간만 봤어도 그냥 자기가 죽고 말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아들까지 병신을 만들었다,

 

이장댁은 상여에 얹혀 떠나는 아저씨의 혼백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 동안 그저 꺼억꺼억 울기만했다. 안방 아랫목에 자리를깔고 그래도 일나갔다 돌아오면 눈을 껌뻑껌뻑하며 맞아주는 아저씨의 자리가 비어버리고, 이제는 그자리에 허리와 등을 새우처럼 잔뜩 웅크린 13살만 아들만 혼자 누워있었다. 

 

이제 아들을 두고 나가기도 어려웠다.

 

비록 눈만 껌뻑이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옆에 아들을 남겨두고 일을 나갈때는 마음이라도 편했지만, 이제는 차마 아들하나 달랑 남겨두고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얼마지 않아 이 아들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맞아 불구가 된 충격에, 하루종일 아버지와 같이 똥냄새로 가득한 방안에누워 지낸 아들이, 그나마 아버지가 하루를 같이 보내며 위로를 주고받던 아버지가 죽자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자기가 싼 똥을 집어 먹거나, 아니면 며칠씩 아예 똥오줌을 참는 바람에 방광염과 변비가 생겨 손가락으로 똥을 파내기가 일쑤였고, 어떤날은 풍선처럼 부풀어진 방광 때문에 아이를 들쳐업고 동네병원에 가서 오줌을 빼내는 일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행동이 점점 더 이상해졌다,

 

그 총명하던 아이가 하루종일 이상한 소리를 하고, 대소변에 대한 집착이나 혐오가 짙어졌다, 때로는 자기 손가락을 아예 없애기라도 하려는 듯 하루동일 이빨로 열 손가락을 물어 뜯거나 입술을 깨물어 피를 줄줄 흘리기도 예사였고, 때로는 머리를 땅바닥이나 벽에 쾅쾅 찢는 바람에 방바닥과 벽면을 전부 스티로폴로 깔아야했다,

 

이제 식구들이 전부 미쳐나가거나 아니면 전부 죽기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 상황에 이장댁 아주머니를 붙들어 둔 유일한 힘이 신앙심이었다.

 

아주머니는 삶이 몸서리쳐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모당을 찾아 기도했다, 또 하루가 고달프고 그야말로 숨을 한번 내쉬기도 힘이들때면 예수의 고난을 되새기고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걸었던 그 십자가의 길을 되밟았다.

 

이것은 과연 신의 시험이었을까? 아니면 악마의 저주였을까?

 

그것은 아마 받아들이는자의 마음에 답이 있었을 것이다.

 

이장댁에게 그것은 신이 자신에게 내린 시련이었고, 말하기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묘를 잘못 썼거나, 집터가 나쁘거나, 그것도 아니면 살이 낀 악마의 저주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장댁을 걱정하는 친정 오빠는 이장댁 몰래 부적을 붙여 살을 풀려고 했고, 본당 수녀님은 늘 그런 이장댁을 위해 같이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그러나 기도도 응답이 없었고, 액막이도 효험이 없었다,

 

아들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가는데 , 원래 말수가 적었던 딸이 결단을 내렸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이다. 

 

원래 신앙심이 깊었던 딸은 성년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었다, 늘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그만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었다, 

 

이장댁은 딸의 수녀원행을 쉽게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평상시였다면 믿는 집안에 은총이라 받아들일 일이지만, 지금 딸의 출가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딸의 흉중에 집안에 일어난 일련의 일에 대한 보속의 의미나 희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 된 일이었다, 또 설명하기 어려운 집안의 우환들을 막아보기위해 신에게 귀의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일이었다. 혹은 사는게 힘들어서라면 그것은 더더욱 잘못 된 일이었다, 더우기 그것이 응답하지 않는 기도에 지친 것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남편과 자식을 그렇게만든 죄인은 스스로 종신서원을하고 하느님의 딸로 살겠다는 딸을 말릴 수가 없었다. 이장댁은 딸을 믿었고, 딸 역시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었다.

 

딸이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날, 이장댁의 마음에는 하나뿐이 그딸이 마치 임당수로 떠나가는 심청이같은 마음이 들어 밤새 모녀가 붙들고 울었다. 그러나 이장댁의 눈물과 딸의 눈물은 다른 것이었다, 수녀원에 들어가던 딸은 단지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의 고난을 버려두고 떠나는 인간적 정리가 아파서 운 것이지만, 이장댁은 혹여나 자신의 잘못이 하나뿐인 딸이 수녀원에 가게끔 한 것이 아닐까 눈물이났다..

  

결국 집에는 어머니와 아들 두사람이 남겨졌다,

 

그러나 이것역시 불행의 끝이 아니었다..


 

내가 진료실에서 이까지 이야기를 듣는데도 심장이 뛰고 입에 침이 마르는데. 여기서 또 더 다른 이야기가 있다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원래 이장댁 아주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진료실을 찾았었지만, 나는 이글을 쓰기 불과 몇달전에야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병원에 오실때마다 늘 미소를 머금은 사람좋은 얼굴로 어떤 작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오셨는데, 내가 우연히 아주머니에게 "근데 이 아이가 친손자에요? 외손자에요? 아이 엄마가 멀리 사나보죠?.." 하고 물었다가, 아예 오전 진료를 전폐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동네 어른들이 으례 그렇듯이 대처에서 일하는 아들이나 딸을 위해 손자들을 맡아 기르시는걸로 알았었고, 때문에 이장댁 아주머니가 늘 아이의 손을 잡고 오시는 것도 당연히 그런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아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분의 엄청난 삶의 과정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듣고 이장댁 아주머니가 내 방에서 나가시자마자 바로 전화를 들었다.

 

마침 그때는 지인을 통해서 모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삼고싶다는 제안이 왔을 때 였었는데, 나는 당연히 그것을 거절 했었다.

 

그 이유는 그쪽에서 나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경제전문가로 행세하게된 과정에다, 의사로서 왕진을 가거나, 어려운 분들을 돕는 그림등을 집어넣자는 콘티를 설정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가 실제로 어려운 분들을 한번도 변변하게 도운 적이 없는데다가 설령 그런일이 눈꼽만큼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방송을 통해 노출을 한다면 도움을 받는 분의 인권은 무엇이 되는냐는 문제 하나와, 또 장애로 누워 계시는 분에게 적당히 낡은 왕진가방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왕진을 가서 슈바이쳐 행세를 하자는 가증스러운 설정도, 그야말로 어쩌다 "마지못해서" 가물에 콩나듯 있던 일을, 마치 일상인양 미화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쪽에서는 그래도 자기들이 잘 설득하면 그분들이 방송에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허락 할 것이라는 것이고 (아마 그분들이 허락한다면 그건 그분들이 거절하기가 난감해서 일 것이다), 아울러 실제 촬영하는 동안에는 왕진이 없다 하더라도, 예전에 다닌적이 있으므로 그런것은 일부 연출을 해서 꾸며도 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나로서는 안그래도 내키지 않는일을 거절할 뚜렷한 명분이 생긴셈이었다.

 

그래서 그쪽에서 제안한 두개의 프로그램을 전부 거절하고, 나중에는 내 지인을 통한 그쪽 간부의 요청까지 어렵게 거절했었는데,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그 프로그램이 생각이 났다.

 

아주머니가 진료실을 나가시자마자 전화를 한 곳은 바로 방송국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콘티를 제시했던 그 공중파 프로그램의 작가에게 먼저 아주머니의 사연을 소개하고 "나같은 삐에로 의사말고, 이 아주머니같은 분을 소개하면 어떻겠는가.. 나같은 광대야 보는사람들에게 당의정같은 흥미거리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남길 메시지가 없지만, 이 아주머니의 사연은 아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자고나면 살인에,강도에,도청에,사기에.심지어 시어머니 뺨때리는 드라마에. 벗고 날뛰는 얼빠진 녀석들까지,, 그야말로 하루종일 짜증나고 기운 빠지는 소식만 가득한 바보상자에 이 아주머니같은 분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연은 아마도 길고 긴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아주머니가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이분같은 분을 세상에 알리면 좋겠다..그것이 바로 당신들 사명이 아닌가..이분은 그야말로 생불이요, 관음보살이다" 라고 말했다.

 

담당작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화로 울먹였다.

 

나도 전화너머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슴이 뻐근해져서 한쪽 손으로 가슴을 자꾸 쓰다듬어야 했다,

 

하여간 방송국에서는 지금 촬영에 난색을 표하시는 아주머니를 설득중이고, 만약 설득이 성공한다면 (나도 설득중이라 아마 곧 허락하실 듯하다 )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조만간 저녁 8시 정도에 방송되는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시게 될지 모른다.  

 

어쨌거나 아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원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왜 필자가 작가에게 아주머니의 이 처절한 사연을 시청자들에게 소개를 해서 작은 경제적 도움이나마 얻도록 하자고 말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빛과 소금이요, 그야말로 생불(生佛) 이나 관음보살이라고 말했을까..또 그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두고 왜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연이라고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다음 이야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빌려 이렇게 말한다..

 

"네가 지은 크고 작은 죄중에 가장 큰 죄가 바로 태어난 죄다..."

 

그럴지도 모른다.

 

기독교식으로 보면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죄중에 태어난 셈이고, 불교식으로 보아도 현생은 직전의 삶에서 지은의 업이 고스란히 훈습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회개를 불가에서는 수행을 통해 죄(업)을 직시하고, 그것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아주머니의 삶도 그랬을까..

 

이장댁 아주머니의 삶도 끝없는 고행중에 이어지는 보속이었을까?

 

수녀원에 들어간 딸이 일년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들었다.

 

온몸에 열이나고, 견딜수 없는 극심한 통증에 매일밤을 몸부림 쳤다. 그러나 그 통증의 원인을 아무도 몰랐다, 어떤 약도 처방도 듣지 않았고, 병원과 의사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매일 식은 땀을 흘리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정체모를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수녀원을 나왔다.

 

환속..

 

신부님이나, 수사님, 혹은 비구들의 환속과, 수녀나 비구니의 환속은 다르다,

 

세상은 그들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보지 못하고, 단지 그들이 세속의 연을 끓고자 했던 사연과, 그 줄을 다시 잇는 이유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것도 전자의 경우는 지나친 경외로 후자의 경우는 혹독한 편견으로 말이다..

 

더구나 그것이 수녀원일 경우에랴...

 

사람사는 곳이란, 누군가의 눈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매국노가 있고 애국자가 있으며, 남을 등쳐 먹는자와 남에게 베푸는자가 공존하는 법이다.

 

구더기는 똥물을 먹고 살면서도 마냥 행복하고, 인간은 그것을 보면서 구토를 느낀다.

 

이렇듯 현상을 보는 시각이 천갈래 만갈래인데,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딸을 바라보는 이장댁의 마음을 우리가 다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서 이일을 "이장댁의 입장에서 지난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이장댁은 이제 더 이상 정을 붙일데도, 마음을 둘데도 희망을 걸데도 없었다.

 

남편은 죽고, 아들은 불구가 되고, 하나 남은 딸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희망마져 사라져 버렸다. 한 인간의 삶에서 이렇게 철저히 무너지는 삶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소설처럼, 영화처럼,, 순식간에 그녀의 삶을 붕괴 시켰지만, 그녀에게는 불과 몇년사이에 자신에게 닥친 불행들을 핸들링 할 죄소한의 기회도 주이지지 않았다, 

 

그것이 단지 이장댁에 국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오만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순간까지 행복하다면, 만약 당신이 지금 이순간까지 큰 불행을 겪지 않았음에 안도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행운일 뿐 당신이 운명을 조율한 결과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성실한 삶을 살아오던 가장이 두명의 자녀를 두고 불타는 지하철에서 "사랑해" 라는 문자를 남기고 죽어가기도 하고, 사랑하는 어린딸을 옆에 태우고 차를 운전하던 엄마가 살인범들의 손에 생명을 잃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이장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혹은 편안하게,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들려주는 이장댁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이장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은 대개 죽는 사람들을보고 왜 죽느냐고 하지요,., 그렇지만 사실 산사람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랬다,

 

우리는 살아있는자로서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를 모르고 똥물속의 구더기처럼 꼬물거리고 있는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내가 구더기를 바라보듯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 그녀의 말은 이미 내가 이를 수 없는 어떤 깊은 경지의 사색을 담고 있었다..

 

어쨌건 수녀원에서 돌아온 딸과, 반신불수의 아들과 함께 이장댁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이장댁은 밤이면 수녀원에서 나온 딸이 원인모를 병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낮에는 겨우 팔만 움직이며 몇마다의 알아 들을 수 없는 단어만 토해내는 아들을 보살펴야 했다,

 

딸의 병은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라고도 하고, 면역 질환을 의심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던 딸의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고, 아들 역시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장댁고 지치기 시작했다.

 

이 모든일이 자신이 지은죄다 싶어, 그저 힘들고 눈물 날때마다 성모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면서 참아내던 의지도 현실의 삶이 조금식 갉아 먹기 시작했다, 어느날부터 집안에는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세사람의 남은 식구들은 서로의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웃집 김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김씨 할머니는 작년에 하나있던 아들을 잃었었다. 아들은 몇 년전에 늦장가를 가서 어렵사리 딸을 하나 얻었지만, 재작년에 하우스에 실패해서 농협빚을 잔뜩지고 고민하더니 작년에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아이엄마가 어린 딸를 두고 혼자 집을 나갔다. 

 

김씨 할머니는 그때부터 혼자서 두살배기 손자를 키우며 살다가 간밤에 돌아가신 것이다,,

 

할머니 여건이나 나이로 보면야 이런꼴 저런꼴 안보고 가시는게 호상이지만, 어린 아이가 큰일이었다, 그나마 일가붙이들이 키울 형편은 안되고 도망간 애기 엄마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다시 나타날리도 만무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기는 천상 고아원으로 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장댁이 그날 할머니 상가에 다녀온 저녘에 아들을 목욕시키고, 몸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하는 딸에게 밥을 먹인 다음, 혼자 벽에 머리를 기대고 고달픈 몸을 쉬고 있는데 좀전에 상가에서 본 그 어린 아이 얼굴이 떠나지를 않는 것이엇다,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줄도 모르고, 이제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상가 마당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던 그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그러고보니 어쩌면 그아이도 태어난게 바로 죄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세상에 혼자 던져진 어린아이의 운명을 생각하자 이장댁의 목이 메였다..

 

그날 이장댁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두운밤,,

 

밤새 문풍지 소리처럼 아들의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땀방울이 고통에 신음하는 딸의 이마를 적시는 동안 이장댁은 어둠속에 잠든 두 자식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밤새 그 어린아이의 얼굴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딸과 상의했다,

 

그 아이를 거두기로,,

 

"비록 우리들의 삶이 남의 눈에 비루해 보이더라도,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 하나 거둬먹일 힘은 남아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 할 용기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살아 있는 삶에서 천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어서 천국이 있을리가 없다,"

 

이장댁은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록 지금 우리가 힘들지만, 그래도 네 동생은 누나와 엄마가 있어 이렇게 돌보아질 수 있다, 하지만 네 동생이나 다름없이 똥을 싸고, 기어다니는 그 어린것은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지 않느냐,, 사실 그 어린것이나 네 동생이나 다를게 뭐가 있으냐,, 우리가 다큰 네 동생도 이렇게 씻기고 먹이는데,, 저 작은 몸 하나 씻기고 먹이는게 뭐 그리 힘이 들겠느냐,, "

 

비록 밤이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낮이되면 일상 생활이 가능해지는 딸아이도 거기에 기꺼이 동의했다.

 

두 사람은 아이를 데려다가 정성들여 키우기 시작했다.

 

이장댁은 낮에 일을 나가고, 딸은 동생과 어린아이 둘을 같이 돌보면서 그렇게 그해를 살아갔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생겼다,

 

어린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그렇게 이유를 찾지못해 애를 먹던 딸아이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마치 카잔챠스키의 "그리스도 다시 못박히다"의 주인공 마놀리우스처럼 딸 아이의 몸이 정말 기적처럼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새 어느듯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두사람이 먹이고 입히면서 얻은 그 갸륵한 키운정이 새로 아이의 부모가 되기로 나선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졌다, 아이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 잘 키우세요,, 곱게 키우세요,,많이 사랑해 주세요.. " 두 모녀는 눈물로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두사람은 그 어린 아이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속에 깊은 치유의 은혜가 베풀어졌음을 깨달았다.

 

세사람은 그길로 정든 시골마을을 떠났다,

 

익숙한 성당의 친절한 교우들과, 늘 자신들을 안쓰럽게 보살펴준 많은 이웃들을 떠나 안동 시내로 이사를 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한 딸아이가 어떤 자선단체의 복지관에서 근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많은 수입도 생겼다.

 

딸아이가 복지관에서 받는 황금보다 소중한 몇십만원의 급여와, 이장댁이 주물공장에 다니면서 받는 그 보다 더 많은 월급까지., 이제 세사람이 먹고 살기에 족한 만큼의 넉넉한 살림살이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아들도 장애인 시설에 보내졌다.

 

이제 두사람의 급여로 아들의 치료비를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 역시 지능이 겨우 7-8 세 수준에서 머무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 의사를 표시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가능하다면 최대한의 재활 치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것마져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시설에 보내진 아들은 한달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누나와 엄마만 부르고, 밤이면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치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시설에서도 더이상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차라리 집에 있는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모녀의 충만한 가슴에는 그정도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두사람의 마음속에 걸려있던 것들이 다 뚫려버린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아이를 재활원에 보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못해서 늘 걸려했는데. 차라리 집에서 돌보는것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으면서 두 모녀는 마치 면죄부를 받은양 행복해했다,

 

아주머니는 어렵사리 얻는 일자리를 그만두고 다시 아들을 돌보면서, 인근 빌딩의 청소일을 시작했다, 아들은 아침 점심상을 차려주고, 저녘에 목욕을 시키면 혼자서 TV 를 보고, 때로는 어린아이들이 읽는 만화책을 읽기도 했기 때문에 중간에 하루종일 출근하지않고 중간에 짬을 내서 할 수 있는 청소일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이 가정이 눈에 띄게 안정되가는 찰나에 이장댁의 눈에 또 다른 버려진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안동만해도 독거노인에, 혼자맡겨진 아이들이 무수히 많다,

 

그 아이들은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에 길러지다가,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다시 시청으로 고아원으로 흩어져가는 운명이었다,   이장댁 아주머니는 그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성당으로, 이웃으로 다니며 입양을 부탁했고, 성당의 교우들과 신부수녀님들도 입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데려다 키우다가 다시 떠나보낸 아이가 열명이 넘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문제였다,

 

세살된 남자아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이 아이는 손가락이 하나가 더 많았는데다 얼굴의 생김새도 약간 이상했다, 머리도 작고, 코도 낮고, 지능도 약간 떨어졌다, 그나마 성한 아이들도 입양이 어려운 세태에 이 아이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세월이 가는만큼 나이를 먹었고, 이제 8살이 되면서 취학 연령에 도달했다, 약간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특수학교를 가기에는 난감한 아이,,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 호적이 없어 학교도 보낼 수 없는 아이.. 그렇다고 시설에 보내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픈아이..

 

두 사람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우리로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아직 시집도 안간,, 혼자사는 처녀인 딸아이의 앞으로 아이를 입적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아이가커서 할머니 나이인 이장댁의 호적에 아들로 등재 된 것을 보고 주워온 아이라고 마음이 상할까봐, 차라리 아버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기위해 처녀인 딸의 호적에 아들로 입적을 시킨 것이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이장댁의 손자가되고, 이장댁 딸의 아들이되었다,

 

.........

..

 

이장댁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났다,,

 

나는 가슴이 너무 뻐근하게 아파서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움켜쥐고사는 그 모든것들이 또 욕망하며 살아온 지난 삶들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이장댁의 눈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이장댁은 이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마치 법당에 모셔진 보살상처럼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말 희안하게도 당사자는 웃고, 듣는이는 울었다. 아주머니는 지난 삶을 고통이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분에게 아들은, 혹은 딸은, 그리고 손주는 모두 희망일뿐 절망이 아니었다.

 

" 원장님.. 사람들이 죽어서 천당가려고 애들을 많이 쓰지요.. 하지만 살아서 천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어서 천당은 없답니다.. 그저 오늘이,, 여기가 천당이거늘 하고 살아야지요,, 원장님은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니까 이상하지요?,, 이제 저 할망구가 돌았나 싶지요?.. 그런데 나는 진짜 행복합니다.. 내가 무엇이던 할 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내가 그 감사함을 느낄수 있는게 또 감사하고.. 내 자식 남의자식 내곁에서 돌 볼 수 있어 감사하고.. 하느님이 감사하고,., 그래서 이렇게 노상 이렇게 웃고 다니지요,, 웃지 않으려고 해도 너무 좋아서 자꾸 웃어지지요.."

 

나는 이 장면을, 이 아름다운 표정을 하찮은 언어 따위로 기록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끝내고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주머니가 진료실을 나가시고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도취된 사람처럼, 마치 영혼이라도 빼앗긴 것처럼.. 그렇게 그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슴이 터져 버릴것 같은 이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방송국에 전화를 들었었다.

 

그러나 아직 아주머니가 방송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지난주에 그 과정에서 더 많은것을 알게되었다.

 

동네사람들이 전하기를, 아주머니가 몇년째 몰래 쌀이나 부식을 모아다가 노인네들이나, 불쌍한 사람들 집앞에 놓아두고 가기를 몇년째였는데, 그것도 마치 동화속의 주인공처럼 캄캄한 밤에 아무도 몰래 그일을 계속해 오다가 얼마전엔가 그 주인공이 아주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후 아주머니는 동네주민들과 태화동성당의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신부님의 요청으로 가끔 자신의 아픈 경험을 신자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년전에는 이 사실을 알게된 시청의 적극 추천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는데 아주머니는 내게 그런 얘기를 일절 말하지 않았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

 

희망과 절망이라는 것,,,

 

여러분은 혹은 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서로 얼마나 사랑합니까........................?

 

 

2005/08/17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