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 걸레스님 중광 [重光, 1934~2002.3.9] ●
속명은 고창률(高昌律)이며,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걸레스님',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하며 살았다.
1960년 26세 때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하였으나 불교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 때문에 1979년 승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선화(禪畵)의 영역에서 파격적인 필치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명성을 얻었고,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높게 평가받았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한 후 '걸레스님'으로 불렸다.
1979년 미국 버클리대학교 랭커스터 교수가 펴낸 책 《광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며 그로부터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하였다.
미국 뉴욕의 록펠러재단과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대영박물관 등에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중광의 일화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 《허튼 소리》(1986)로 만들어졌고,
이두용 감독의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1990)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막걸리통에 소주를 담아 마시는 등
과도한 음주와 줄담배로 건강이 나빠지자
1998년 강원도 설악산에 있는
백담사로 들어가 선수행하며
달마 그림에 몰두하였다.
백담사의 오현(五鉉) 스님으로부터 '바위처럼 벙어리가 되라'는 뜻의 '농암'(聾庵)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2000년부터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벙어리 절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달마도
그리기에 열중하였다.
2000년 10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마지막 전시회가 된 〈중광 달마전: 괜히 왔다 간다〉를 열었다.
2002년 3월 9일 타계한 뒤 동년 3월 13일 양산 통도사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저서로 《허튼 소리》(1989), 《벙어리 절간 이야기》(1997) 등과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펴낸 《도적놈 셋이서》(1989) 등이 있다.
걸레스님 중광의 무애(無碍)사상
"괜히 왔다 간다!" 라며 죽음의 문턱을 넘어 가면서도 자신의 무애와 파계의 삶을 소주 한 잔 마시듯 쉽게 넘어가 버린
걸레스님 중광
"나는 세속의 굴레에서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다 .
나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며 내 생활과 내 작품 안에서 그 자유를 성취하고자 한다"라며 하얀 도선지 위에서 춤을 추는 검은붓자루처럼 자유롭게 춤을 추며 삶을 살았던 고창율씨.
창률이는 1935년도에 제주도 제주시 외도리 275번지에서 출생하여 통도사의 김구하스님의 제자가 되면서 출가의 길을 걷게된다.
고창률이라는 속명을 버리고
월하스님으로 부터 중광이라는 법명을 받고는 수행을 하지만 오래지 못하고 스스로 파계의 길로 들어간다.
그의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행동은 일반인들로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행자(奇行者)였고 급기야는 불교 종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세상을 닦아내어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천한 걸레임을 자처하며 밑바닥인생을 살았다.
모든 사람들이 재물과 권위로 삶에 존재했음의 도장을 찍을 때 중광은 그림과 시로서 삶의 흔적을 허공에 띄워 보낸다 .
세상 사람들이 음밀히 즐기는 성행위를 중광은 표면 밖으로 꺼집어 내어 즐기기도 한다.
그는 성행위를 우주의 가장 원천이며 근원으로 접근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행위로 간주되어 부끄러워 하거나 추하게 생각지 않는다.
아무 거리낌이나 걸림이 없는 의식의 소유자였다.
세상 모두가 미친놈의 예술을 처다보지도 않을 때 세계적 대석학 루이스 랭카스터 박사가 중광의 예술과 오도(悟道)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동양의 신비한 예술세계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중광의 작품을 보고
"정말 멋지다. 한국의 피카소다" 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는 중광이 동양의 숨은 진주를 발견한 듯 그의 작품에 빠져 들었고 급기야
중광의 작품 선화집을 미국에서 발간하였고
그를 초청하기도 하였다.
걸레가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외부에 먼저 명성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전시회(허튼소리)와
방송의 조명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세상을 조롱하는 미치광이었다.
부처의 도리를 지켜야 할 스님들이 법도를 이탈하여 파계의 길로 빠진 스님들도 많다.
신라의 원효를 비롯하여
경허선사, 대안스님, 만공, 혜월 등 많은 스님들이 있지만 중광스님만큼 광인은 아니었다.
그만큼 중광은 실험대상의 인물로 지목되어
"허튼소리"라는 중광스님을 모델로 하여
영화화 되고 또 다른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서는
직접 출연 하기도 한다.
책은 "중광의 허튼소리"와
"걸레스님 중광" "괜히왔다 간다"등 중광의 기행을 담은 글들은 미친중, 걸레중, 狂人, 奇人으로 서술되어있다.
법의 도리에서 벗어나면,사슬의 굴레를 벗어 던진다면 우리도 중광처럼 춤을 출 것이다.
*** 또 다른 글
일체에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 된다면
우리도 중광처럼 옷을 벗어 던지고 성기를 내어 놓고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
그는 자연과 인간을 둘로 보지 않았고 부처와 중생을 갈라 세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육신을 파괴 하면서까지 가식적 세상과 부딪혔다.
그의 원초적인 행위를 봄으로서 위선으로 감추어진 세상을 알게 해 준 스님이었다.
그의 예술작품은 해학적이면서 천진난만하였고 우주의 원초적인 성기를
달마의 머리에다 씌우기도 하며 부처를 어린동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는 많은 그림과 시를 남겼다.
작품에서 중광의 삶을 확실히 이해 할 수 있다.
<미친소리>
나는
천당과 극락을
오른쪽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고
지옥은
발바닥 밑바닥에
가지고 다닌다
양심은
하늘에 걸어두고
이슬처럼 따먹는다
<허튼소리>
한민춘 판사님 자모 49제를 지내 달라기에
서슴치 않고 대답을 했지
그리고 현금 2만원을 달라고 했지
마침 내가 쓰고 싶은 일이 있어서지
그리고 법상에 기어올라갔지
밑천이라곤 뱃속에 똥뿐인데...
김혜윤 자모 영가야!
이름을 불러 놓고 할 말이 있어야지
갑자기 이미자 노래 생각이 떠오르더군
그래서 냅다 꽃피는 유달산아 꽃을 따던 처녀야!
신나게 불렀지
영가야!
내가 부른 노래는 영가가 부른 노래니라
속히속히 일러라
주장자를 세 번 내려 쳤더니
늙은 노송이
귀를 막고 돌아간다 돌아간다
그래 놓고 법상에서 내려왔더니
49제 손님들이 쑥덕 쑥덕 하더군
-어느 판사님이 모친의 49제를 부탁하길래 할 말은 없고-
<나는 걸레>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삼천대천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나는 걸레
남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탁주 한 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달이랑,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 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 잔 꺽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중광이 불교계의 감찰부에 끌려가
모진 고난을 받고는 중복을 벗고서 쓴 시-
♥ 진해 연화궁의 연화연선공주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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