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울엄마가 다섯살에 고아가 되엇던 스토리

각계♡ 2025. 8. 7. 12:22

1946년도 12월 제주 애월 고성리 우리집
오늘은  울집이 잔치집인양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돼지도 잡고 시끌 버쩍하다
아버지가. 한라산 반대쪽 동네 서귀포 중문지서로 옮겨 간다고. 아버지와 같이 근무하던 경찰분들하고
동네 친척들이 먼동네로 떠나 보낸다고. 환송회라도 하는 모양이엇다
그다음날로. 떠나고선  아버지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앗다.   한달에 한번정도 올정도 엿다
우리동네는 강씨 문씨 양씨 들이모여 사는. 동네인데
한두집건네 일가일정도로.  친척들도 많앗고  할아버지댁은 우리집과 바로 붙어 있엇구
외할아버지 댁은. 골목을 나가면 바로엿다
마을에는 큰 비석이 있는데. 일제시대 군대에  제주에서 몇명뽑여간. ..쟐은 모르겟지만 하여튼 군대가서 전사하신 외삼촌을 기리는 공적비 같은것도. 동네어귀에 있엇고
아버지도 일본에서 학교를 다녓고 해방후 경찰을 햇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귀포 중문지서에 간 이후로 어쩌다 한번 오면. 그곳은. 고향인 애월 쪽하곤 많이 다르고 텃세도 세서 힘들다는 투의 말들을 잠자리에서 엄마와 나누던것이 얼핏 기억난다

중문지서로 간지 몇달 되지 않읏 제주시내에서 열릿 47년도 삼일절기념행사에서. 경찰이 쏜총에. 시민들 대여섯이 죽엇다. 한다..
가뜩이나 요즘 동네분들이 경찰을 보는 시선들이 좋지 않은데..
. 부락민들이 돌아가며 점심식사를 제공하곤 햇엇는데 총격사건이후론 동네에서 식사도 공급을 끊엇다
경찰의 윗사람들은 밀리면 안되니
지금사과니 책임자처벌요구를 들어줌 큰일난다며
강경한 대응 을 계속 지시해오고 있다
일선 현장과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3월 13일 제주 시민들은 총파업을 진행코 있으며
중문지서 양경한 주임은 본인이 부덕한탓에
부락민들의 신임을 잃어서. 그렇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사표를 내겟다고 하는데
그러자 다른 순경들도 그게 왜 주임탓이냐 며
주임이 그만둠 우리도 함께 그만두는게 맞다며
함께 사표를 내엇다
사표를 내고 떠나오며 주임이. 부락민들. 보라고 게시글을 남겻는데
금일까지 경찰본분을 다하기위해 최선을 다햇으나
총격사건으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화하엿다
그러므로. 더이상의 악독한 명령은 따를수 없으니
금일부로 사표를 내고 중문지서 일동은 경찰을 떠나고저 합니다 란 게시글을 남기고. 각기 고향집으로 떠낫는데
그게시글이 왠걸  제주도는 물론 육지의  주요 신문에도 기사가 실린모양이다
애월지서 근무하는 친구가. 난리낫다며
빨리 피하라고 지금. 경찰지휘부에선.  당장 체포하라고..지금잡히면. 죽을수도 있다고 해서
사직할때 경찰복을 보름내 제주본청에 반납하라 햇는데..그럴여절도 없어서 일단 옷은 옆집인 장인집 마당. 고구마굴에 숨겨두엇다. 그러곤
일단 집을 떠나. 산쪽으로 들어가 피햇다

한라산에 가니..많은이들이 도피하고 있엇는데
게중에는 아는 이들도 있멋구  어설프게 무장을 하고 있는이도 있엇다
우연히  같은 동네 아저씨뻘 되는. 분이. 나의 사정을 듣고는.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자고 말을 햇으나
시민들에게 총쏘는것이 싫어  경찰을 떠나온것인데
지금도 경찰중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과 싸우는 일에 동참은 어렵다고 사정이야기를 하니 이해를 해주엇다
그곳을 떠나올때 꿩. 한마리를 주기에 대신 집나올때 가져온 고구마  몇개로 보답하고 떠나왓다
한라산 이곳 저곳을 다니면. 약초나 산나물
노루등 나름 먹거리는 있엇고 중간중간에 은신하기 졸은. 굴도 많아. 도피하는데는. 용이햇다

몆달뒤에. 밤에 모처럼 집에 갔더니  장인이 끌려갓다고 한다. 마당에 숨겨둔 경찰복을
내가 경찰을 죽이고. 숨겨둔거라며
경찰을 죽이는데 동조햇다고. 체포해 갔다고 한다

일이 거잡을수 없게. 커지고 있지만  어찌 방법이 없다
중문지서의 동료들은 이미 잡혀서.  지서양주임님은
육지 교도소에 갖혀있다고 하고 한순경은  한달넘게 잡혀있다  반병신이 된후 풀려낫다고. 하고 다른 동료들은 어찌됫는지..소식을 알수없다
들리는 소문에는 양주임은 형제들까지. 빨갱이로 몰아 죽엿다고도 한다

문제누 남의 일이 아닌것이다
요새들어 경찰들이 가족들이 사는집.을. 자주 감시하고 간다고 하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다

48년 9월이 되어. 중간마을 에서. 농사를 짖는 아는 형님네  농사일을 거들러 갔다가.. 잠시 바위에 누워 단잠이 들엇는데.. 동녜 꼬마들이 수상하다며 지서에 신고한. 덕에 하계리 지서에 감금되엇다
그곳에는 안면있는 경찰도 없엇다. 47년 파업이후 육지에서 많이들. 충원되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맗앗는데. 매우거칠고 폭행과 고문 까지 하며
사직서 져출햇던것이 공산당의. 명령에 따른것 이라는 진술서에. 지장을 찍으라는데 ..  잘못 찍음
골로 갈수 있기에 버텻다

한달여 지서에서. 때리고 해도 말을 듣지 않자 제주검찰에 넘겻고 검찰에선 경찰보단 덜해지만 그곳도 무법천지는 매한가지엿다
그곳에서 두세주 있다가. 광주지검에서 재판을 받앗는데. 재판관이   나의 말을드터니 보석석방을 명령핸덕에  풀려낫지만
여젼히  재판은 끝난게 아니니.. 거주지를 떠나지 말라고 경찰이 엄포를 햇으나.. 요즘분위기가 어찌 바뀔지 모르기에 다시 산으로 도망쳣다
그러는중에 왠걸 장인집을 수색해 전에 숨겨둔 경찰옷을. 찿아낸후 그걸 갖고 내가 경찰을 죽이고 옷만 땅에 묻은거구 그것을 장인이 다알고 숨긴거라며 장인을 경찰을 끌고가. 죽엿다
총살을 당햇다는데..칼로도 찌른 흔적이 있엇다 한다

어디까치 걀려고 하는지 모르겟다
일본눔들한테 해방되어 나라를 찿앗다 조아라 한게 엊그제 인데..  지금. 세상이 미쳐간다
일본눔들이 양반이엇던것 같기도 하다
들리는 말에는. 구라파에서. 세계대전후에 독일에서 해방된 헝가리 폴란드등 여러나라들이 공산화가 된거루 미군들이 빨갱이 빨짜에도. 소스라 칠정도로
옝신하게 반응하기에..이승만 정부도 미군에 비위에 적극. 협조하는 형국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여부는 잘모르겟다.  여하튼 48년 11월. 부터는. 정말 걸리연 죽는. 분위기로 바뀌엇구 장인이 죽고 며칠뒤 아내와  아직 돐도 안된 막내아들.그리고. 언니를 도와 조카를 돌보던 처제 까지 잡아가. 죽엿다..
큰일이다 이젠 집에는 다섯살 짜리 딸하나와 여덟살짜리 머슴아 둘인데..  큰눔은.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졋다고 한다
아마  갑자기 엄마등 가족들을 잃은 충격때문인듯하다

고성리 사람들은 모두  아랫마을로 이사 내려 간곳에서. 아이들을 보러 밤에 들려 쪽장을 자고 새벽같이 나오려 하는데. 지서에서 사람이 나왓다
아는 사랑 이엇다. 뭐 지서주임이. 다른곳으로 옮겨가게 됫는데 오늘 이 떠나는 날이니. 만나서 지서주임에게 부탁을 함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엇다
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갓는데
그길로 체포되어 영영. 못나가게됫다

남겨진 애들이 걱정이다. ..아버지외 큰형네는 혹시 불똥이 튈까 잔뜩 몸사려 울애들을 보살필것 같지도 않고. 이웃사는 장모는..  남편이 죽고 딸들 둘도  죽임을 당해서. 제정신이 아닐것이라..

지난번처럼 아무일 없이 풀려남 다행인데
분위기가 그때와는 천지차이다
잠도 잘재우지 않고 먹는것도  수시로 주지않는다
맞아서 죽어나가는 친구들도 있는듯 하다
언제부턴가. 재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
그사이. 제주에서 광주로 다시 제주로. 그리고 다시 전주 지검으로 넘겨져 우선 전주형무소에 미결수로 있다
우째 재판이라도 얼려야 하소연이라도 할텬데

전주로 온게 50년 1월인데 벌써
6월이다
오늘은 간수들이 우왕좌왕하고있다
삼팔선어서 전쟁이 일어낫다고 한다
그동안  자주 부딫혓던 그런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 난거라는거다

전쟁상황은. 더욱 나빠지는듯 하다

뭔일이 일어나나 보다
많은 경찰들이 몰려와 재소자들을 트럭에 태워 보내는데. ..얼마뒤엔 시끄런 총쇼리가 들려온다
벌써 3일째인데..오널은 내가 끌려가는 날이다

이렇게 중문지서에서 사직서를 제출햇던일 로
빨갱이로. 몰려  전가족이 죽임을 당햇던  순경
강수헌(울엄마의 아버지.)은  전주형무소에서. 재소자전원을 사살할때(한국전이 일어나고 북한국이 밀고내려오자 경찰은 후퇴할때  전주교도소 재소자
전원을 사살햇다고  알려지고 있다
강수헌은 50년 1월 전주지검으로 송치됫다는 기록이 마지막 생존확인기록이다.. 즉 전주형무소예서 천여명의 재소자전원을 사살시. 포함됫을가능성이 크지만  명단들이 남아있지않아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체 ..  다섯살딸은 자신의 아버지 유골도 끝내 찿지. 못하고. ..제주지법에. 아버지 강수헌에 재판재개를 요청해. 명예회복을 하고자 햇던 노력도. 법원이 자신들이 강수헌에 대한 기록물이 없기에 (  분명 검찰기록에는 재판이 진행됫던 사실이 확인됨,보석석방..구소기간연장. 구공판일등명기됨)  변론재개를 받아들일수 없다는
아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전화로 거절한다고  통보받은날.  ..그 다섯살 여자아이의.  힘겨웟고 슬픈 삶이 끌나버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