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엄은 천만다행으로. 유혈사태없이 마무리됨으로. 정치적 해프닝인양 유야무야 하려는 세력이 있다
철저히 거짓말이다
군경에. 총을들고 국민들과 맞써 나가라고 출동시키면 누구하나. 실수이건 과격한 몸싸움중에 순간 총성 한발만 울렷다면..지금처럼 되지 않앟을것이다 순식 간에 놀라 아수라장이 되며 당연히 군경도 총격을 가하게 되며 다수의 유혈사태가 발생햇을거구 수도 서울이긴해도 막상 피의 두려움은 누구나 있기에 이번처럼 계엄이 실패로 갔다고 장당할수 없엇던. 일촉측발의 위기엿던것이고. 명령을 내린 대통령의 손에선 이미 떠난 총알이 그나마 현장에 출동한 지휘관들이 개인별 실탄을 나눠두지 않앗다고 하고. 나름 군인들도 다들 배울만치 배운사람들이라.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당장은 성공할수 있을지언정.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것을 알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군인들 과 막아선 현장의 시민들덕에 조기에 계엄이 취소 된것이다
이런중에 계엄군 쪽에서보면 반동분자인. 법무부 감찰관 1명은. 계엄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귀가햇다고 하기에..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과거의 사례를 보면. 게엄이 성공햇담 계엄중에 사직서를 던지고 귀가한 자는
빨갱이 내지 불순사상을 가진자로 몰아 죽임을 당햇거나 ..고문폭행등을 한딜쯤 당하다 구사일생 사면될수도 있엇을 만큼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한 일이엇다 는것을. 국회를 막아선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칭송한다. 당시. 열심히 댓글로 이러다 끌려가는거 아냐 하다 까짓것 잡아갈테면 가라카메 하며 열심히 댓글로 공격한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947년 3월은. 하물며 계엄도 아닌데. 시민들에 총격을 가하는 등의. 강경진압 명령에. 거부하고 사직서를 던진 경찰관 6명이 중문지서 경관관 6명이엇다. 경찰의 총격에 죽은 시민 5명에 대한. 관련책임자처벌과 사과를 요구햇을뿐인데. 그걸 제주도 빨갱이섬이라며..강경진압 일변도로 대응햇던 경무국장 인가가 조병옥이엇다
그리고 앞서언급한 사직서를 제줄하고 경찰을 떠난 6명은 강수헌 양경한 송공삼 순경은 해당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죽임을 당햇고 강수헌의 가족 6명도 젖먹이 아이까지 죽임을 당햇고 양경한님도 형제 2명도 죽임을 당햇으며 그외 다른가족들의 피해도 있을것으로 보이나 확인을 못햇다(양경한님이 아직 4.3희생자로 미신고 중이기에. 가족들도 몰살되엇을 가능성이 높은듯..신고할 유족이멊는경우가 미신고되는게 보통)의
송공삼순경의 가족들의 피해상황은 확인 못함
그외 한태화순경이 한달동안 끌려가 고문폭행당하다 구사일생 방면됨
나머지 강경진 강석호. 두분의 피해상황 확인불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그나마 이번 계엄에서 사직서를 제출햇던 분은 불법에 가담치 않은 칭찬받을 사람이되엇으나 4.3사건 당시에는 계엄군이 이긴. 수만명의 시민을 죽여서라도 성공한 계엄이라 시민들에 총구를 향하는 짖을 당시 사직서를 던진중문지서 6몀의 경찰관은 아직도 빨갱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