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3월1일 삼일절기념 집회에서 경찰의 총격에 무고한 시민 5~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제주시민들을 책임자처벌및 사과를 오구하나
당시 경찰지휘부는 시종일관 강경대응을 지시한다
그런즈음 중문지서원 6명은 경찰지휘부의 명령에 더이상 따를수 없다면서 전원사직서를 정식으로 제출하고 떠난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일인데 사직한 경찰분들은. 이후 어떤일을 격엇을까는 잘알려져있지 않다
일단 최근에 중문성당에서 4.3관련 희생자들을 언급하는것에서. 당시 지서 주임 양경한님은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서 사망햇다는것을 알게 되엇다.. 이분은 평화재단 희생자 명단에도 올라와 있지않은것을 보아선 아마 가족들도 모두 몰살된것이 아닌가 싶다..고인의. 같은 고향에 양경* 두분이 희생자로 평화재단에 등재된것을 봐선 가족들중 형제2명도 포함되어 잇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나 친척들중 어느분이라도 희생자 신고를 해주면 좋을것인데..상황은. 모르겟다
당시 도피해서 체포되지 않앗던 강수헌님이 나의 외조부신데..이분도 2년여 도피생활하다
49년 1월에 장인이 도피자가족이라고 체포되어 총살 2월엔 처.8개월된 아들.처제가
9월에 강수헌 본인이 체포되어 (체포당시는 끌려나가지 않고 예전 경찰시절 친구엿던 고향친구와 함께 나감, 지서주임 만나러) 죽임을 당햇고..8 살짜리 큰아들은 당시 충격으로 정신질환 앓다 55 년 죽는다..그리고 외사촌 형제 도 강수헌과 교류가 있다고. 누명씌워 죽임을 당햇다는것은 최근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편에서 확인할수 있엇다 문제는 이분도 가족들이 없이 죽임을 당햇으니 아직도 4.3 희생자로 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아마 이리저리 미신고자들이 아직도 매우 많을것이다. 강수헌의 8개월된 아들도 호적도 없이 사망햇기에..그리고 큰아들은 4.3기간이 아닌 55 년에 사망햇기에 희생자 신고를 못햇다 2023년에야 할수 있엇다.. 이 두명에 강수헌님외사촌. 만해도 3명이다 최근 신고햇거나 아직 이신고 상태인분이.. 7명중 3며인것이니.. .참고로 이글을 쓰던중 제주 평화재단 쪽에세. 강수헌님은 그동안. 체포된후
흔적도 없이 죽인것으로 들어 알고 있는데 50년당시 전주 형무소 수감기록이 확인된다 는것을 듵엇다.. 물론 전주형무소에선 50년 7월경 수형자 전원을 총살하고 암매장햇다고 알려졋으니 크게 다른것은 없으나 수형기록이 확인된다면 ..형사재심의 여지는 생길듯 하다
(그동안 어느누구도 형무소에. 수감되엇다는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이 없기에.. 강수헌님의 유일한 딸 이나. 당시 동네분들도 모두 경찰이 체포해간후 죽엿다고 들엇다고 증언해왓엇다)
송공삼순경도 당시 해당사건으로 희생됨
(평화공원에 희생자 명단 유)가족들의
희생여부는 불명
그리고 한태화순경의경우 생전에 남긴 증언기록들에서 체포된후 한달여. 고문과 폭행을 당한후 풀려난뒤에..교사가 되어 정년을 마친것으로. 알려진다. 만
평화재단 희생자 명단을 보면 송공삼 님과 한태화 님의 이름도 올라가 있긴해서..일단 송공삼님은 당시 중문지서 순경분이 맞는것 같다..(평화재단 관계자도 당시 순경이 맞는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태화님도 당시 경찰인것 같긴한데..문제는 당시에 사망하신것은 아니시기에.. 4.3사건 피해자들이 후에 돌아가신분들도 평화재단에 희생자 명패가 올라가는지는 확인해볼 여지가 있을듯하다
강석조 강경진 두분 순경의 피해상황은 불명
이글의 요지는 47년 비부장상태의 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총을 쏘는등 강경진압을 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고 경찰본분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햇던 경찰들은 아직도
파업참가자로 파면된것으로 만 알려졋지만 실상은 본인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함께 희생된
국민들에 충성을 다한 경찰들인데 아직까지도
그들에겐 불명예의 멍예가 쓰여 진체로 그대로 있다
이들이 떠난후 3~4일뒤 중문지서에선 새로 충원된 경찰들에의한 총격에 시민 8명의 사상자가 났던 것만봐도 사직으로 맞선 그분들의 용기와 정의는 분명 재평가 받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