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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434이항성(1919~97)

각계♡ 2016. 11. 8. 17:12

 

이항성

이항성

시대 현대
출생일1919년
사망일1997년
유형 인물
직업 판화가, 화가
성별
분야 예술·체육/회화
본관 전주(全州)

요약 1919년∼1997년. 판화가·서양화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규성(奎星). 전라북도 익산의 용안(龍安)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강경(江景)의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1938년에 서울로 올라와 동양극장 중심의 무대미술 일을 하기 전에 대전의 양화가 권중록(權重祿)에게 그림 지도를 받았다.


활동사항

광복 직후인 1947년부터 초급 및 중등 미술 교과서(검인정) 출판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51년에는 문화교육출판사를 설립하여 각종 미술 서적을 간행했다. 1956년에는 또 하나의 출판사로 신미술사를 설립, 비정기 잡지 『신미술(新美術)』을 12호(1959년)까지 발간하며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의 뜻이었던 화가 생활도 병행, 현대적 판화 작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6·25 전쟁 시기인 1951년 첫 다색 석판화 개인전에 이어 1958년에 두 번째 판화 개인전을 가짐과 함께 유강렬(劉康烈)·정규(鄭圭)·최영림(崔榮林)·김정자·이상욱(李相郁) 등과 최초의 한국판화협회 결성을 주도하였고, 회장이 되어 첫 회원 작품전도 꾸몄다.

1959년에는 미국 신시내티(Cincinnati) 미술관 국제판화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석판화 「다정불심(多情佛心)」이 입상하여 판화가로서의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굳혔다. 불교적인 전용 의식과 한문 글귀의 회화적 형상화 등으로 동양적인 표현 감정과 정신성을 내재시킨 판화 작업은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만년에는 목판화와 실크 스크린(silkscreen) 기법을 즐기며, 「염(念)」·「정(情)」·「사(思)」·「심(心)」 등으로 명제한 심정적인 연작을 남겼다. 판화가로서의 다채롭고 뚜렷한 작품 업적은 1950년대부터 유화 및 혼합 재료의 캔버스 작업과 병행되었다.

후자의 화면 창조는 초기의 추상 표현주의 지향을 거쳐 1970년에 파리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한 이후에는 독특한 방법으로 동양적 형상성과 신비감의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곧, 캔버스에 여러 성질의 한지를 자유롭게 붙이어 그 자체로 조형적 요소가 되게 하고, 그 위에 먹물·유화 물감·동양화 물감·염색 물감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색상을 조화시킨 순수한 추상 화면 창출이었다.

그러한 작품들로 파리와 퀼른·프랑크푸르트·밀라노를 비롯한 유럽 주요도시와 미국의 뉴욕·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일본 동경 등지의 유명 화랑과 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잇달아 가지며 열정적으로 국제적 활동을 보임으로써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특히 국제 사회의 여러 비극적 대형 사건을 주제 삼아 평화의 염원을 담은 대작을 연작하여 주목을 받았다. 1992년 한국 유엔 가입 1주년 때에 유엔 산하 유니세프(UNICEF) 본부에 기증한 「평화 명상지념(瞑想之念)」은 1980년대의 한국 민간 항공기 KAL의 공중 폭파 사건의 비극을 애도한 평화 염원의 대표적 역작이다. 1996년에는 프랑스 리용시 초대로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다.


화가 이항성은 1950년대 말 한국 현대미술이 고개를 들적에 선두에 서서 움직인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 먼저 문화교육 출판사를 설립하여 미술 교과서를 냈고 지금도 채산이 어려운 미술출판에 손을 대어 <세계미술전집>을 편찬했다. 본격적인 미술잡지인 <신미술>이란 잡지를 1956년 9월호로 창간해서 미술문화를 선도했다. 나는 이 무렵에 <세계미술전집> 집필이란 임무는 띄고 그의 사무실을 드나들었고 그 곳에서 <미술입문>, <한국미술사> 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한편 판화가로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개최한 제5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특선해서 한국인으로는 남보다 먼저 국제전에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판화는 그가 생각해낸 아연판 기법으로 독특한 미의 세계를 실현했다. 아연판은 거듭하여 찍는 과정에서 깊이와 운치가 생기는 독특한 조형효과를 갖고 있었다.<이렇게 미술출판와 판화가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항성도 50대 중반을 넘어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서 생의 마지막을 예술에 전력하였다. 그가 1970년대 중반부터 생애를 걸고 간 파리생활의 작품이 이번 5주기 전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번 출품된 대작들은 그의 사상이 되고 있는 평화를 의식한 방법으로 한국의 한지를 써서 부드러운 조형효과를 낸 작품이 많다. 화면에서 유채의 번짐이 한지 특유의 섬세한 덱스처와 혼합되어 독특한 마티에르를 형성하였다. 정규 미대 출신은 아니었지만 신념과 끈기로 자기 예술의 의미를 찾은 노력형 화가이다. 이항성의 작품에 서린 한국적인 이미지는 그의 예술의 바탕이 생명체같은 상형문자, 한국의 전통, 가령 고인쇄나 민예같은 민중의 예술을 터전에서 우러나왔다. 즉 불굴의 정신으로 쌓아 올린 작품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