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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가절감 전문 컨설팅
(안되는 이유를 찿기보단 되는 이유를 찿는다)</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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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16 Aug 2026 03:50: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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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각계♡</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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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ㅡ누군가 나를 꽃이라 불러줄때 나는 그에게 꽃이된다</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7</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나는 김춘수시인의 꽂인가 하는 시를 참 조아하며&lt;br&gt;그걸. 나의 삶속에도 적용또는 응용하거나.&amp;nbsp;&amp;nbsp;아니지&lt;br&gt;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는것을 본다&lt;br&gt;나는&amp;nbsp;&amp;nbsp;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lt;br&gt;사랑은&amp;nbsp;고래처럼&amp;nbsp;쓰다 병들면 버려질수없기에..칭찬에. 반응하며 오버하는것을 조심해야하고&lt;br&gt;&lt;br&gt;&lt;br&gt;칭찬이나. 비난에도. 일희일비 하지 않는것이 정답이지만. 나의 지인이나 가까운이들의 멘탈이 모두 철갑멘탈은. 아니니..&amp;nbsp;&amp;nbsp;특히나 가까운이들에&lt;br&gt;&amp;nbsp;&amp;nbsp;그들이 나의 별생각없이 던질 칼날에&amp;nbsp;&amp;nbsp;훅 가라는 맘이 아니라면 혹여라도. 나의 입으로&amp;nbsp;&amp;nbsp;칼날을 씹어 뱉을찌라도 살살&lt;br&gt;여유를 봐주는 것이. .어쩜.나에게도. 이익이 될것이다&lt;br&gt;&lt;br&gt;그나마. 나는 칭찬이란 총탄의 위험도 알고 조심함&amp;nbsp;&amp;nbsp;되는거지..남들에게 그총알을 마구 쏘댄들. 당장의. 어떤 데미지를 주는것은 아니니..&lt;br&gt;칭찬은&amp;nbsp;&amp;nbsp;뭐. 좀 쉽게쉽게. 쏴대도 되나. 반대로. 상처를 휘비는 칼날과 같은 말들은...아주 조심스럽고 가급적&amp;nbsp;&amp;nbsp;상대가. 쉽게 피할수 있는정도로.&amp;nbsp;&amp;nbsp; 돌려돌려. 말을 하는 지혜를.. 나도 배워야겟다&lt;br&gt;ㅎㅎ&lt;br&gt;세치혀의 잠깐의 카탈시스를 느낀 &amp;nbsp;후폭풍으로 인해&amp;nbsp;&amp;nbsp;나에게 돌아올&amp;nbsp;&amp;nbsp;실질적 큰 손해를 감당할팔요는 없다&lt;br&gt;&lt;br&gt;어떤집에는 아파트 2채가&amp;nbsp;&amp;nbsp;주요재산으로 있는데&amp;nbsp;&amp;nbsp;남편의 배려로. 아파트 2채모두 아내 명의로 해두엇는데 남편이 잠시&amp;nbsp;&amp;nbsp;하는 일이 슬럼프를 타 유동성위기가 오니&amp;nbsp;&amp;nbsp;주택담보대출을 조금받고저 아내에게. 부탁을 햇다고 하는데 아내왈 당신이 그동안 벌어다준것은 아이들 키우는데 쓰는데도 부족햇음 ..그러니 오늘 한말은 못들은것으로 할게요..그말에 남편은 멘탈은. 깨졋고..동료애 또는 가족애. 공동체의식이란게 사라지며. 부양에 대한 의무감도 사라졋다고 한다...&amp;nbsp;&amp;nbsp;아무 생각없이 던진말에..삶에서 가장. 큰힘이 되는 동업자이자&lt;br&gt;식구의 사기를 급전급락시켯고 결국 그댓가는 그날부터 끊겨버린 생활비로 아내 본인이 힘들어졋다고 한다..그남편은 이후 여건이 나아졋지만..한번깨진 신뢰는 회복되지 않앗고&lt;br&gt;자신의 재산 모두를 가져갓으니 자신은 굳이 .더이상. 아내에게 경제적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lt;br&gt;&lt;br&gt; &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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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kakei.tistory.com/2307#entry2307comment</comments>
      <pubDate>Sat, 9 Aug 2025 21:06: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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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ㅡ제주에서 다섯에 고아가 되어 열다섯에 고추장 단지 하나 안고 쫏기듯 떠나온 여자아이의 고된삶</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오빠가. 여덟아홉에 가족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것을. 격으며. 정신병을 얻어. 온갖 괄세와 괴롭힘등을 격으며 . 열다섯무렵&amp;nbsp;&amp;nbsp;사람들을 피해 창고같은 곳에 숨엇다 갖혀 굶어 죽은후(어린 여동생이. 오빠~하고 불러도 무서워 도망가 숨곤 햇엇다)한두해 지난후&amp;nbsp;&amp;nbsp;그때까지도 학교도 가지않은체&amp;nbsp;&amp;nbsp;동네 이집저집의 애기봐주기 빨래해주기.물길어주기.땔감주워다 주기..설것이하기등. 잔심부름을 하며 살아가던 손녀딸이&amp;nbsp;&amp;nbsp;혹여라도. 손자처럼 천덕꾸러기로 크다&lt;br&gt;같은 운명이라도 될까싶엇는지&lt;br&gt;외할머니 내나이 열세넷 에 부산행배에 실어 떠나보냇다.. 부산에서 버스기사 보조를 하는 사촌오빠를 찿아감 어데 공장이라도 취직시켜줄거라고..달랑 고추장 단지에 마른 갈치를 담근것을 쥐어. 휴가나온 군인아저씨 한테 붙여 부산행 배를 태웟다&lt;br&gt;12시간 넘게 배를타고 부산에 내려 사촌오빠를 찿아갔으나 할머니가 생각한데로 되질않앗다&lt;br&gt;오빠가 하는일은.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때. 돈을 받고 하는 안내양 같은것을 하고 있엇는데&lt;br&gt;막상.&amp;nbsp;&amp;nbsp;미싱공장등을 데려갓지만 모두 너무 어리다고들 거절햇다..&amp;nbsp;&amp;nbsp;일자리도 못구하고. 한동안 막막한 생활을 하는동안. 오빠가 버스요금 받는것을 조금씩 삥당을 해서&amp;nbsp;&amp;nbsp;어찌&amp;nbsp;&amp;nbsp;조금씩 도움을 주곤 햇지만 &lt;br&gt;오래지속 할수는 없엇는데. 그래도 오빠가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조그만택시회사 사장네 식모살이. 자리를 구해주엇다&lt;br&gt;그집에는 식구가 열명정도 되어.&amp;nbsp;&amp;nbsp;혼자서&amp;nbsp;&amp;nbsp;열식구정도의 밥을 준비하는 일이엇다&lt;br&gt;그일을 한두해 할때쯤 그집 사장이 미싱공장에&amp;nbsp;&amp;nbsp;자리를 알아봐 그곳을 소개해 주어 옮기게 되엇는데&lt;br&gt;나올때는&amp;nbsp;&amp;nbsp;빈손으로 내보내는게.. .어린맘에도 큰상처가 되엇다 당장 월세방보증금 도 없이 나온것이다..결국 2년동안의 식모생활은 그동안의 숙식민 해결된셈인것이엇다&lt;br&gt; 다시 잠시 사쵼 오빠의 도움을 받고 어쨋든 미싱공장에서 보조로 일을 하면서 배웟다&lt;br&gt;뭐 배운거라곤 제주에서 애보고 빨래하고&lt;br&gt;설것이..물깆기 .그런것밖에 없으니..사람관계나 &lt;br&gt;뭐하나 쉬운게 없엇다&lt;br&gt;같은 공장에서&amp;nbsp;&amp;nbsp;가까이. 지내던 동생이 나에게 자꾸 자신의 집에 데리고 해서..&amp;nbsp;&amp;nbsp;못이기는척 갔는데&lt;br&gt;&amp;nbsp;&amp;nbsp;그집의 부모님들도 딸처럼 살갑게 대해주셧다&lt;br&gt; 그래서 그집에는 자주 찿아가곤 햇는데&lt;br&gt;그동생이 어느날&amp;nbsp;&amp;nbsp;아는 오빠라며 사람을 소개해 주엇는데&lt;br&gt;키고크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엇다..&amp;nbsp;&amp;nbsp;몇번 만나며 나에게 호감을 갖기에 언제 사람들의 관심이나 호감을 받아본젹없던 나는 쉽게 그사람과 가까워졋고&lt;br&gt; 곧 살림을 차려 살게 되엇다 허나 그렇게 살림을 차린 이후부터..그사람은 군대를 탈영하여 쫒기고 있는것을 그제야 알게되엇다. 그러다 보니 사는곳도 계속옮겨 다녀야 햇다. 그런와중에도 남자의 집에서는 아이를 못낳는다. .천대와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엇다&lt;br&gt;그러던 한번은 울산의 조선소만드는 공사장에서 일을하겟다고. 떠난후 몇달간 연락도 없엇다&lt;br&gt;마침 아이가 생겨 배는 산만해 지는데 일하러 간 사람은 아무런 연락도없지..그래서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 조선소를 만든다는 공사장을&lt;br&gt;찿아가긴 햇으나&amp;nbsp;&amp;nbsp;원체 넓고 사람들이 맗아 찾을수가 없엇다. 어쩔수없이 못나가고 그냥 돌아오는데&lt;br&gt;올때는 기차를 탓는데..기차에서 양수가 터져 기차에서 아이를 낳게 되엇다.&amp;nbsp;&amp;nbsp;우째 아이를&amp;nbsp;&amp;nbsp;안고&amp;nbsp;&amp;nbsp;어른들이 사는집을 갔는데 그동안은 아이를 못난다고 괄세를 햇엇는데 막상아이를 안고. 들어가니..올캐라는 여자가&amp;nbsp;&amp;nbsp;기차에서 애를 낳앗음 기차에 애를 버리고 와야지 그걸 뭐라고 데리고 오냐 며.&amp;nbsp;&amp;nbsp; ㅈㄹ을 부렷다..기가 막혓다.&lt;br&gt;그뒤 얼마뒤&amp;nbsp;&amp;nbsp;울산에 일하러 갓다던 남자가 돌아가 이번에 같이 함안에 산판에 일자리가 있으니 같이가자고 해서&amp;nbsp;&amp;nbsp;부산에서 함안까지를. 버스비도 없어 그먼길을 걸어 갔다. 한여름에 어린 애도 데리고 그먼길을 가는게&amp;nbsp;&amp;nbsp;보통일이 아니엇다 몇날을 가던중 잠시 나무그늘에서 아이와 잠시 눈을 부치고 있엇는데..눈을 떠보니. 아이와 나뿐이엇고. 나중에 안 사실은 산판쪽으로 가는 트럭인가를 세워 혼자 얻어타고 간것이엇다&lt;br&gt; 어린아이를 안고 어찌 할수가 없어서 일단 왓던길을 되돌아 부산으로 돌아왓는데..그런길에 어린애가 힘들엇는지.. 어린생명이. 세상을 떠낫다&lt;br&gt; 그런일이 있은후에.&amp;nbsp;&amp;nbsp;몇달뒤&amp;nbsp;&amp;nbsp;다시 짐을 챙겨 예전에 간다던 함안의 산판을 찿아 묻고 물어 며칠을 걸어 &lt;br&gt;함안 산판에 갔더니..매우반가워 하며 밤에 짐을 몰래빼곤&amp;nbsp;&amp;nbsp;길을&amp;nbsp;&amp;nbsp;떠낫다..&amp;nbsp;&amp;nbsp;그동네. 사람들어게 부산관광을 시켜주겟다며 돈을 걷은것을 갇고 도망친것이엇다..&lt;br&gt;사람이. 완전히 망가져있엇다&lt;br&gt;그곳을 도망치듯 간곳이 김천 직지사동녜 엿다&lt;br&gt;&amp;nbsp;&amp;nbsp;그곳에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에서 자리를 얻어 살앗는데. 남자는 양조장에서 일을. 하고 나는 양조장에서 받은 막걸리 몇병과&amp;nbsp;&amp;nbsp;간단한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직지사&amp;nbsp;&amp;nbsp;식당들이 많은곳에서 노점장사를 하며 샬앗는데&amp;nbsp;&amp;nbsp;&amp;nbsp;&amp;nbsp;우리가 사는집. 이웃에. 시집갔다가. 아이가 없다고 쫒기듯 다시 돌아온. 여자가 있엇는데 나보다 한살정도 어렷다. 그녀와 언니 동생을 하며 친하게 지냇는데. ..그사이 죽은 아이를 대신해 딸아이가 태어낫는데&amp;nbsp;&amp;nbsp;그녀가 울 아이를 매우 이뻐하며 자주 돌봐주기도 햇엇고 아이도 내가. 노점장사를 하는동안. 이모이모하며 잘 놀앗다&lt;br&gt;그런데. 언젠가 갑자기&amp;nbsp;&amp;nbsp;애아빠가 사라졋다&lt;br&gt; 아무 말도없이 사라진것이다&lt;br&gt; 어쩔수없이 기존대로 양조장에서 술병을 가져와 노점에서. 광주리에 아이를 앉히고..기존처럼 장사를 하며 일단 삶을. 영위해야 햇다&lt;br&gt;지난번에 아이가 한번 잘옷됏기에 같은실수를 반복할수는 없엇다&lt;br&gt;당시엔 직지사에. 관광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앗고 &lt;br&gt;딸이광주리에 앉아 있는데 오히려 가여워 보엿는지. 사람들이 많이 사주어도 생활하는데는 큰어려움이 없엇다&lt;br&gt;그런 생활이 한해정도 지속되던중에. 내가 장사하는 근처에&amp;nbsp;&amp;nbsp;식당에서 일을하던 아저씨가. 자기 처남인데&lt;br&gt;딸하나 둔체 &lt;br&gt;최근에. 아내와&amp;nbsp;&amp;nbsp;사별햇는데. 요즘. 사람이 낙담해서 술에 취해 사는 자기 처남좀구해달라며 그에 맞는 여자 하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아는 이를. 소개해주겟다 한뒤 둘을 만나게 해주엇다&lt;br&gt;만나고선 둘다 맘에 들엇는지..결혼을 하겟다고 햇는데. 여자가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께 허락 받고 오겟다 가고선 함흥차사엿다&lt;br&gt;난감햇다.&lt;br&gt;결혼한다고 해서 나름. 맘의 준비와 기대가 컷엇는데..&amp;nbsp;&amp;nbsp;나에게 계속.&amp;nbsp;&amp;nbsp; 그여자와 다시 연락해봐 달라. 부탁해왓지만 나라고 뽀쪽한 방법이 없엇다&lt;br&gt;&lt;br&gt;그러던 한날 나의사정을 잘알던. ..처남 재혼시키기에 매진하던 그식당. 아제가 ..이왕이렇게 된것..나보고. 직접. 자신의 처남과. 결혼 하는것은 어떠냐고 &lt;br&gt;..겨속 권유햇다...나름. 미안함도 있엇고 지금의 내처지도 그렇고 아직 아이의 호적신고도 안된 상황이고..&amp;nbsp;&amp;nbsp;.같이 살던 남자는 연락두절이 된지 2년이 되가고&amp;nbsp;&amp;nbsp;그와는 혼인신고마저. 하지도 않아&lt;br&gt;아이를 호적에도 못올리는 상황이라..&lt;br&gt;그런상황들을 모두 알고 있기에 자신의 처남에게도 말을. 햇고 전혀 문제가 되지않고 자신의 호적에 올리면된다는 이야기도 들엇기에..&amp;nbsp;&amp;nbsp;그쪽으로 맘을 정하고. 함께 살곳을&amp;nbsp;&amp;nbsp;직지사에서 추풍령고개를 넘어 영동 과수원에서 일을 해주면 살림을할수 있는 집이 지원해준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약속하고..&amp;nbsp;&amp;nbsp;일단 아이에 대한&amp;nbsp;&amp;nbsp;약속은 받긴햇으나 그래도 아이아빠에게 먼저 승낙은 받을 필요가 있엇고 내심 아빠를 찾음 아빠에게 맞기는게 좋겟다 생각하고 &lt;br&gt;면사무소에&amp;nbsp;&amp;nbsp;아이 문제등을 상의하다 그곳에서 사는곳을 알게되어..조치원에 사는곳을&amp;nbsp;&amp;nbsp;아이를 데리고 찿아갔다 &lt;br&gt;찿아갓더니. 남자는 없구&amp;nbsp;&amp;nbsp;집에는 왠걸 직지사에서. 나에게 언니언니 하던 여자가 어린 남자아이를 앉고 &lt;br&gt;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없엇다&lt;br&gt;나를보고는 그녀도 놀랏는지 어찌할바를 몰라햇다&lt;br&gt;아이의 아빠가 있으니 어짜피 너가 같이 키우라고 아이를 떠주고 나오려는데 왼걸 딸은 그집 아이와 벌써 친해져 사이좋게 놀고 있엇다&lt;br&gt; 아직. 젗을 떼지 않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딸어 젖을 먹이고. 집을 나오는데 그제야. 엄마와 해어지는것을 눈치챗는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나왓다&lt;br&gt;조치원 역에서 김천을 오는 기차는&amp;nbsp;&amp;nbsp;하루에&amp;nbsp;&amp;nbsp;두번정도엿는데. 물론 제일싼 통근기차. 말고는. 자주 있엇지만..여유가 없기에 저렴한 통근기차시간까지 &lt;br&gt;네다섯시간이나 남아있엇도&amp;nbsp;&amp;nbsp;왠지 젖이 불어 젖가슴이 아프기도 해 이참에 아이한테 젖이라도 많이 먹여야겟다 싶어 그집에 다시 들렷는데&lt;br&gt;그집 주인 아주머니가 말하길. 더이상 미런 갖지말고&amp;nbsp;&amp;nbsp;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라는거엿다&lt;br&gt;세상천지에 저런. 사람처음봣다며&lt;br&gt;저여자는 이미 충분히 죄를 받고 있다며 매일같이 술에 쩔어 들어오면&amp;nbsp;&amp;nbsp;여자를 때리는게 장난이 아니라고 매일같이 맞고 살고 있다고&lt;br&gt;저런사랑하곤 인연을 끊을수 있담하루라도 빨리 끊어야 하는것이니. 아무 미련없이 떠나라고&lt;br&gt;당부를 햇지만 ..&amp;nbsp;&amp;nbsp;아이에 젖을 먹이는 중에 남자가 돌아왓는데. 어쩌다 보니&amp;nbsp;&amp;nbsp;저녁이 되어. 막차는 놓진거구 다음날 아침기차를 타아 해서 한방에서. 아이를 않은. 나와 역시 아이를 안은 그녀와 &lt;br&gt;가진거라곤 허우대만 멀쩡한. 아이 아빠가 잠을 자는둥마는둥. 새벽이 되어 조치원 역으로 향하는더&lt;br&gt;밤에. 아이를 아빠쪽에서 키우겟다 이야기가 다되엇는데..막상. 조치원역에 와서 국밥 한그릇씩을 &lt;br&gt;어른 셋과 어린아이 둘이 먹고 해어져야. 하는데&lt;br&gt;갑자기 아이아빠가 돌변하면서. 아이를 데려가던지 고아원에 데려다 주라는것이엇다&amp;nbsp;&amp;nbsp;자신은 못맡것다며&lt;br&gt;어린여자아이의 옷을 다벗겨버리는데..&amp;nbsp;&amp;nbsp;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딸을 데리고&amp;nbsp;&amp;nbsp;김천(직지사)행기차를&lt;br&gt;탓다 그게 마지막으로 아이 아빠를 본것이다&lt;br&gt;그러고 직지사로 돌아와. 약속대로 영동으로 가서. 과수원안에 마련된 살림집에서 살림을 꾸리곤 이번에는 혼인신고를. 금새햇으며&amp;nbsp;&amp;nbsp;아이도 약속대로 &lt;br&gt;남편의 아이로 호적에 등록해줫다&lt;br&gt;남편은 세상에 다시 없는 착한 사람이엇다 남편의 사별한 딸은. 나의 딸보다 한살이 많앗는데 어찌된게 호적신고가 잘못되어 내딸이 호적상으론 되려 일년이 빨랏다.&lt;br&gt;그리고 그딸은.&amp;nbsp;&amp;nbsp;영동에서 황간으로 가는 중간동네인&amp;nbsp;&amp;nbsp;가리라는 동네에서 남편의 부모가 데리고 있엇는데&lt;br&gt;여간 이쁘장햇다, 아이는 본능적인것인지&lt;br&gt;나에겐 잘 다가 오지 않앗고 일단은. 기존대로 살다가 천천히 데려오기로 햇다. &lt;br&gt;그런와중에 옥천동이면 평산리 에. 있는&amp;nbsp;&amp;nbsp;남편의 사별한 전부인의 친정집에 가서 인사를 들이며 &lt;br&gt;따님의 아이도 잘맏이ㆍ 키우겟다고 말씀드렷다&lt;br&gt;어른들이 참선비셧다 정씨 집안 이엇는데&lt;br&gt;내가 어린시절에 부모가 모두 여윈것을 듣고선&lt;br&gt;오고싶은 친정처럼생각하고 들르라고 하셔서&lt;br&gt;친부모님처럼 생각하겟다 말씀드리고 돌아왓다&lt;br&gt;실제로 그뒤로도 일년에 한두번은 인사를 드리러&lt;br&gt; 거의 20 여년뒤&amp;nbsp;&amp;nbsp;아버지가&amp;nbsp;&amp;nbsp;돌아가실때까지&lt;br&gt;계속 왕래를&amp;nbsp;&amp;nbsp;햇다&lt;br&gt; 그집 형제들과도 오빠 언니 동생 으로 부르며 &lt;br&gt;꽤오랜 시간 왕래를 햇다 &lt;br&gt;나중에 중심이되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곤&lt;br&gt;왕래가 자연 줄어들엇지만 말이다&lt;br&gt;다시 돌아가&lt;br&gt;남편네는 지금은 남의 머슴살듯 과수원에 언힌집에 사는 신세지만 원래는 일제때 일본에 건네가 돈을 꽤 모은모양인데 갑자기 전쟁이 끝나며 귀국할때. 일본쪽에서 마니. 빼앗겻고 그전에 고향에 됸을 보내&amp;nbsp;&amp;nbsp;전답등을 사달라며 보냇던. 돈들은&lt;br&gt; 엉뚱하게 고항의 다른이의 배를 불린것만 되엇고&lt;br&gt;그나마 일본에서 들어올때 갖고온 금빈지나. 금붙이 등도 꽤 된 모양이나. 시어머니 되는 분이&amp;nbsp;&amp;nbsp;원래쓰던 &lt;br&gt;씀씀이가 커서 금새 바닼이 난 모양이엇다&lt;br&gt;그러니 남편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은&amp;nbsp;&amp;nbsp;조금마는것 같은데 한글도 잘모르니&lt;br&gt;말로는 한국에 와선 지게지는것부터 배웟다고 한다&lt;br&gt;당장. 먹구살아야&amp;nbsp;&amp;nbsp;햇다고..&lt;br&gt;뭐 왕년이 무슨 소용인가마는..여하튼 사랑 은 성실햇고 나한테도 잘햇다. 과수원일은 고됫지만&lt;br&gt;숙식이 제공되는 방식이니.&amp;nbsp;&amp;nbsp;많은돈은 아니어도 돈은&amp;nbsp;&amp;nbsp;좀. 모엿고..&amp;nbsp;&amp;nbsp;과수원에서 산 4~5년만에. 근처 동네 점말에 조그만 집도 살수있엇고. 아래목골이라는 골짜기에 자갈밭이지만.&amp;nbsp;&amp;nbsp; 땅도 살수 있엇다&lt;br&gt;그사이 딸하나와 아들을 낳아&amp;nbsp;&amp;nbsp;이젠 아직 오지않은&lt;br&gt;사별한 큰딸까지함 여섯식구가 된것이다&lt;br&gt;나름&amp;nbsp;&amp;nbsp;행복한 시절이엇다만 행복은 잠시엿다&lt;br&gt;남편이 피를 토하는것이엇다..이것저것 좋다는것을 먹어봣지만 소용이 없엇고..&amp;nbsp;&amp;nbsp;마침 남편이.&amp;nbsp;&amp;nbsp;청산에사는 여동생에게&amp;nbsp;&amp;nbsp;빌려준 돈을 받으러 간다고 갔는데.. 이틀만에 다죽어서. 빈손으로 돌아왓다 &lt;br&gt;나중에 알기론 아마 나에겐 청산에 가서. 돈을. 받아오겟다 햇지만. 그곳엔 가지않고는 중간에 있는.&amp;nbsp;&amp;nbsp;나외 줌매를 한 큰아가씨집에 하루이틀 머물다 돌아왓는데 원래 안좋앗던것이 그곳에서 더욱 심해져온듯햇다&lt;br&gt;그러곤 남편은 몇일을 못버티고 눈은 감앗다&lt;br&gt;나의신세는 왜이런걸까 싶엇다&lt;br&gt;어려서는 부모와 형제들을 모두 잃고&lt;br&gt;큰딸의 친부와도. 끝나버렷고&lt;br&gt;겨우 혼인신고한지 채4년이 안되고 함께 살은지&lt;br&gt;5 년이 안되엇는데 남편까지 떠나보냇으니 말이다&lt;br&gt;어쨋든 남편의 장례는 치러야 하는데. 외지에서 &lt;br&gt;들어와 살은지 얼마 되지않앟기에.&amp;nbsp;&amp;nbsp;문상객도 많지 않앗을뿐 아니라 부조도 거의 없엇는데&lt;br&gt;그런중에 당시에 500 원을 점말동네 곽씨어른이&lt;br&gt;부조를 해주셧다.&amp;nbsp;&amp;nbsp;그게제일 큰돈이엇다&lt;br&gt;그게 평생기억에 남아. 그어른이 돌아가신뒤로도 그댁 경조사에는. 다른집들에 하는것보다 신경을 썻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초상을 치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햇다먀&lt;br&gt;그나마 남은것은 나에게 아이들이 있엇다는것이다&lt;br&gt;어찌 키울지 걱정으로 눈앞이 컴컴햇지만 한편으론&lt;br&gt;이세상에 혼자엿던 내게. 식구가 다섯이나 되는것은&lt;br&gt;그래도 웬지 좋기도 햇다&lt;br&gt;어쨋든 이제는 먹구살 방도를 찿아야 햇는데&lt;br&gt;몇년 농사를 지어보니.&amp;nbsp;&amp;nbsp;이게 여자 혼자선 할수 있는게 아니엇다&lt;br&gt;우선 큰애는 일단 아직 시부모들이 데리고 있으니 &lt;br&gt;제외히고서라도 3남매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lt;br&gt;&amp;nbsp;&amp;nbsp;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잇다 그래서. 옥천 이원에 살던 시동생네에 가서.&amp;nbsp;&amp;nbsp;대신. 점말집에와서 살면서&amp;nbsp;&amp;nbsp;크던작던 땅이 있으니 와서 농사를 지며. 아이들을 몇해동안 맏아달라. 그사이 도시에 나가 뭐라도 해서 먹구살 기반을 닦을 동안만.. 부탁을 햇는데 시동생네도 그러겟다고 흔쿼이 동의하고 약속한 일정에 맞춰 이사짐을 꾸리게 됫는데&lt;br&gt;그사이. 심숨생숭햇다&lt;br&gt;왠지 나의어린시절 아버지와 엄마를 떠나보낸후 큰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내다 죽은 오빠 생각도 나고 나도 이집저집 잔심부름이나 하며 눈치밥을 먹던 것이 떠올라 ..갑자기 고민이 되던차에&amp;nbsp;&amp;nbsp;가까이 사셔서 왕래가 잦던 오정리에 &lt;br&gt;남편의 작은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lt;br&gt;신중하거라. 주는건 쉬운데 다시 가져오기는 어려운법이다&lt;br&gt;한번 내손을 떠남 내것이 아니니 내손을 떠나 보낼때는 신중해야 한다며..&lt;br&gt;그말에 정신이 번쩍들며&amp;nbsp;&amp;nbsp;어린시절 격은 일들이&amp;nbsp;&amp;nbsp;금새 스쳐지나갓다&lt;br&gt;&amp;nbsp;&amp;nbsp;그길로. 저녝ㅇ통근. 기차를 타고 이원어가서&lt;br&gt;지난번에 햇던 약속을 없엇던것으로 물렷다&lt;br&gt;다음날 마침에 짐을갖고 올준비를 하던 시동생네는 황당햇을것이다 만 나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수가 없엇다. 그일로 시동생과는 사이가 많이 틀어졋다&lt;br&gt;&lt;br&gt;어쨋든 남편이 떠난이후도 아이들과 생활은 해야하기에. 혼자선 많이 벅찻다&lt;br&gt;농사일이란게. 뭐든 남자손이 필요햇기에&lt;br&gt;그래도 이웃들이. 많이. 도와줘 조금씩 농사일을 적응해가고 있엇다. 이농사 저농사 하다 담배 농사가 괜찮다고 하는데 건조장이 없엇는데 이웃집들이. 한번 건조할때 공간들이 좀남으니 같이 건조장을 사용하게 도와줄수 있다고 해서. 대신 품앗시. 건조장 연로비를 조금더부담하는 방법들이 있다고 해서&lt;br&gt;담배농사를 시작햇다&lt;br&gt;&amp;nbsp;&amp;nbsp;일은. 고되엇지만 큰기술이 필요치않앗고. 혼자서 일을하다 수확이나 파종등. 일시적으로. 일손을 구해. 농사를 지을수 있엇고&amp;nbsp;&amp;nbsp;좋은게. 농사짓는동안&amp;nbsp;&amp;nbsp;돈이 거의 들지않고. 농약 비닐 씨앗 비료등을 무상으로 지원하곤 나중에 담배를 수매하곤 돈을 공제하거나 그때 돈을 갚음되는구조엿다&lt;br&gt;그리고 수익이 나름 일정한게 장점이엇다&lt;br&gt;밭이 집에서 2킬로쯤되는데 그곳을 리어카를 끌고 다니곤 햇는데. 중간에 고개도 있어 쉽지않앗다&lt;br&gt;그러다 아이들이 제법 성장해서 국민학교를 가니 아이들의 일손도 큰도움이되엇다&lt;br&gt;일단&amp;nbsp;&amp;nbsp;넓은 밭에 혼자서 일을 하고 있는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힘든일인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조금씩 도와주는 덕에. 그래도 효율이 좋아졋다&lt;br&gt;물론 아이들입장엣선 좋은 환경은 아니나 어쩌겟나&lt;br&gt;그래도 울 식구들의 먹구사는 문제인것을. &lt;br&gt;아 남편이 죽고. 4년뒤쯤 시부모들이 키우던&amp;nbsp;&amp;nbsp;죽은 남편의 딸을 데려왓다&lt;br&gt;아이는 앞서 언급햇듯 참이뻣고 영특햇다&lt;br&gt;아이는 긴머리를 하고 있엇는데 아침마다 머리를 감겨 매일 머리를 따줘야 햇다&lt;br&gt;손이 많이 갔지만 어쩔수 없엇다 대신 내가 낳은 애들은 짧게 딘발머리로 햇다&lt;br&gt;바쁜들 여자아이 하나의 머리 따고 하는거야.,&lt;br&gt;뭐 큰문제가 되지않앗다만 여간 친해지기가 쉽지 않앗다 그리고 시부모들이 원체 곱게 키운듯한데&lt;br&gt;우리형편은. 아이들에게 좋은 형편은 아니엇다&lt;br&gt;그나마 꽁보리밥은 배불리 먹이고 있는것도 다행인&lt;br&gt;상황이엇기에..&amp;nbsp;&amp;nbsp;애들은 어쩌다 흰밥을 보면 환장을 하곤 하는걸 모르는 바는 아니엇으나 형편상. 어쩔수없엇다&lt;br&gt;담배농사를 지며 이웃인 안집에서 돈을 빌려 암송아지를&amp;nbsp;&amp;nbsp;삿다&amp;nbsp;&amp;nbsp;길러 나중에 송아지를 낳으면 송아지는 우리것이 될수 있기에..&lt;br&gt;그날도 여느날과. 같이 담배잎을 건조장에 넣기우해 &lt;br&gt;새끼줄에 키워넜는 작업을 그늘이 지는 철긽다리 밑에서. 한창하는데. 철길근처 풀받에. 매워둔&lt;br&gt;소가 기차소리에 놀라 기차에부딪힌거다&lt;br&gt;&amp;nbsp;&amp;nbsp;진짜 인생이 좀 풀릴라 함. 검은 먹구름이 지고하는게 벌써 몇번째인가&lt;br&gt;일단&amp;nbsp;&amp;nbsp;죽은 소는 원래 땅에 묻는거라곤 하는데&lt;br&gt;그날 일하던 사람들과 함께. 수습을 핞후&lt;br&gt;먹을수 있는것들은 골라서.&amp;nbsp;&amp;nbsp; 큰솥을 걹구&lt;br&gt;온동녜 사람들을 불러 잔차 아닌 잔치를 햇다 원체&lt;br&gt;힘들고&amp;nbsp;&amp;nbsp;그동안 마땅히 동네사람들에. 보답할 기회도 없엇기에 이왕 일은 버러진것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산사람들을 위해. 국밥을 끌엿다&lt;br&gt;그리고 나머지 부분과. 뼈들은 수숩해. 산에 묻어주엇다.&amp;nbsp;&amp;nbsp;그다음 날부터는&amp;nbsp;&amp;nbsp;송아지 낳아 갚기로햇던&amp;nbsp;&amp;nbsp;송아지 구입할때 빌린돈을 어찌 갚을까 걱정하는데.&amp;nbsp;&amp;nbsp; 빌려준. 안집어른이&amp;nbsp;&amp;nbsp;우짜겟누&amp;nbsp;&amp;nbsp;천천히 갚아도 된다며 해주셔서 그나마.&amp;nbsp;&amp;nbsp;위기는 넘겻나 싶엇는데&amp;nbsp;&amp;nbsp;며칠뒤&amp;nbsp;&amp;nbsp;철도청에서&amp;nbsp;&amp;nbsp;연락이 와서&amp;nbsp;&amp;nbsp;사고로 인해 기차가 30분정도 서잇엇고 부딪힌곳에 고장도 있다고&lt;br&gt;수리비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철도청에서 서류가 왔는데&amp;nbsp;&amp;nbsp;당시 개인이 감당키 어려운 돈이었다&lt;br&gt;막막한 상황이엇다. 그때 이장 어른이&lt;br&gt;대전 철도청과&amp;nbsp;&amp;nbsp;군청 .도청 등을 찾아 방법을 찿는데 &lt;br&gt;도움을 주엇고 청와대 민원을 넣어주신게 통해서&lt;br&gt;변도의 손해배상없이&amp;nbsp;&amp;nbsp;일이 마무리되엇다&lt;br&gt;아마 그때가 박정희 대통령 있던 78년이나 79년 으로 기억된다&lt;br&gt;그나마 천만대행이긴하나. 그일로 매우 힘들어진것은 사실이엇다&lt;br&gt;사고 당시 소를 보고 있엇던&amp;nbsp;&amp;nbsp;큰애가. 많이 놀랏을것인데. 정황이 없다보니 아이의 마음까지 &lt;br&gt;위로하고 잡아주는것엔&amp;nbsp;&amp;nbsp;소홀햇엇던것 같다&lt;br&gt;결국은 위험을 미리 예상치 못하고 철길근처에서 소를 떼기게 한 나의 잘못인거지 누굴 탓할일은&lt;br&gt;아니엇다&lt;br&gt;어쨋든 그시기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엿음은 분명하다&lt;br&gt;문제는 큰아이 의 국민학교 마지막 겨울방학때&lt;br&gt;서울 동생(큰아이의. 친이모)&amp;nbsp;&amp;nbsp;내려와선 아이를. 서울집에 데려가서 내년부터 야간중학을 보내겟다고 한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다르게 말함&amp;nbsp;&amp;nbsp;내가 어린시절 택시사장집에서 격엇던 식모로 데리고 있겟다는. 뜻이기도 햇기에&lt;br&gt;동의하지 않앗다,. 그러자 아이를 방학동안만 데리고 있게다고 하기에. 그것까지 거절키는. 어렵웟다&lt;br&gt;한달이지나고 이젠 개학이. 며칠 남지 않앗는데도. 아이를 내려보내지 않아 서울을 올라갓다&lt;br&gt;서울에선 꽤 큰 서적을 하고 있어서. 사는 형편은 시골 우리집 형편과는 비교도 되지 않앗다&lt;br&gt;그래서인지. 큰아이는 시골로 내려오지 않겟다는거다&lt;br&gt;일단 학교에 가서 졸업식이라도 참석하자..중학교는 어찌돼도 보내줄테니 라고도&amp;nbsp;&amp;nbsp;설득햇지만.. 서울동생이 아이를 미리 설득해둔것도 있을거구 어린 아이 눈에도 시골에서 밭일도 거들고. 먹는것도.&amp;nbsp;&amp;nbsp;...아니다 어쩜&amp;nbsp;&amp;nbsp;딴에는 지난번. 소가&amp;nbsp;&amp;nbsp;기차에 치어 죽은것에 대한. ..&amp;nbsp;&amp;nbsp;정확히 당시의 사정을 알수 없으나 복합적으로 작용햇다고 보는게 정답일듯하다&lt;br&gt;어쨋든 학교에 찿아가 사정을 이야기해서. 졸업식 까지.참석치 않앗으나&amp;nbsp;&amp;nbsp;졸업은 정상적으로 한것으로 처리는 되엇다&lt;br&gt;어찌되어도 시간은 다시 흐르고&amp;nbsp;&amp;nbsp;남겨진 애들 셋은&lt;br&gt;아직도 갈길은 멀엇다&lt;br&gt;다시 원래처럼 담배농사를&amp;nbsp;&amp;nbsp;해야하고 지난번 사고로 남겨진 빚도 갑아나가야 하고 먹고도 살아야 하는게&lt;br&gt;..그리. 힘든 와중에도 같은 동네에 나와. 같은 처지의 아니지 나왁같이 사별은 햇지만 그래도 남편이 경찰복무중. 사고사 햇기에.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여유는 있엇다 나름 논 밭도. 남겨졋고&lt;br&gt;어쨋든. 동네에서 일년에 한두번 관광이라도 가면 다들. 부부동반이나 그형님과 내가 짝이 되곤 하며&lt;br&gt;어느새. 짝궁처럼지내고. 사람이 선한데다 여하튼 이형님이 논에서. 추수햇다고 흰쌀을 한말을. 주신적이 있는데. 쌀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주에서 다섯에 떠나와 누군가의&amp;nbsp;&amp;nbsp;아무값이 없이 순수한&lt;br&gt;배려란것이. 너무 고마웟다&lt;br&gt;물론 사람은 받으면 줄줄도 알아야 하기에 나름 노력은 햇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형님한테는 평생. 고마움을 잊을수가 없을것이다&lt;br&gt;그시기엔 지난번 기차사고를 정리하는 와중에 많은 도웅 을 받은. 이후로&amp;nbsp;&amp;nbsp;이웃의 이장댁 형님이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같지 않는다&lt;br&gt;문제는 사람관계란게. 자꾸 부딪히고 도움을 받고 하다보니. 어쨋든. 친분은 생긴것인데. 뭐랄까&lt;br&gt;아무 사이도 아닌데..&amp;nbsp;&amp;nbsp;자꾸 이상한시선으로 보니&lt;br&gt;워 말한마디도 조심스럽고 그러다보니..&amp;nbsp;&amp;nbsp;하여튼 아이들도 예마하기에 더욱 조심스럽다&lt;br&gt;우쨋든. 그러던중에 일이 한번 제대로 터졋다&lt;br&gt;담배를 수확해는날 경운기를 이장댁에서 불러( 당시엔 품앗시도 하고. 경운기 같은경우는 일반 사람과 달리 계산하거나 별도로 값을 지불하엿다..그러기에 경운기도 없이 농사를 짖는것은 매우 힘듦) 이장댁 둘째가 경운기에 담배를 잔뜩실어. 비포장길에서&amp;nbsp;&amp;nbsp;아스팔트신장로 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택시랑 충돌하며&lt;br&gt;택시수리비를 십만원 인가를 물어주엇는데 그돈을&lt;br&gt;어쨋든 우리집일을 하다 일어냐 사고라 그돈을 가져다 주엇다&lt;br&gt;그런데. 그돈의 절반인 오만원을 이장어른이. 조용히 가져다 준것이 이장댁 형님한테 걸렷고 그날. 평생격은 챙피함을 다격은듯. 하다..머리끄댕이도 잡히고.. 하여튼 온깆 수모는 다 당햇다&lt;br&gt; 입장 바꿔봄 그럴만도 할수 있기도 하다&lt;br&gt;그일로&amp;nbsp;&amp;nbsp;온 동네 소문도 났고 ..허나 어쩌랴&lt;br&gt; 어쨋든 그날. 핵심쟁점은 전후 맥락은 모두사라지고 그냥 내가 이장아저씨한테 돈을 받앗다는것인데&lt;br&gt;나름 자존심이 있어 그런적없다고 싹 잡아 뗀것같다&lt;br&gt;&amp;nbsp;&amp;nbsp;그러곤. 아이들이 없는 건너말에서 얼마나 울엇는지&lt;br&gt;받앗던 5만원도&amp;nbsp;&amp;nbsp;찢어버렷다. 당시에 만원짜리를 구경키 어려웟는데 다섯장을 홧김에 찢어벼렷다&lt;br&gt;허나 금새 후회햇다.. 따지고 봄&amp;nbsp;&amp;nbsp;경운기사고가 우리일을 하다 생겻다 한들&amp;nbsp;&amp;nbsp;운전자 과실이 제일 큰것이니. 내가 전부를 부담할 필요는 없기도 한것이고&lt;br&gt; 지금당장 5만원이면&amp;nbsp;&amp;nbsp;한달은 먹거리를 해결할수 있는돈인데..싶어 찟어던 돈을 엻심조각을 맞춰. 테이프로 붙쳣다&lt;br&gt;치사하지만 어쩨랴&lt;br&gt;그일로. 이장댁 과는 관겨가 완전히 틀어졋고&amp;nbsp;&amp;nbsp;시람관계가 하루아침에 딱 끊어지길 어려워도 이장어른과도.&amp;nbsp;&amp;nbsp;&amp;nbsp;&amp;nbsp;관계를 단절햇다&lt;br&gt;허나 그렇다 한들&amp;nbsp;&amp;nbsp;이장어른께. 참 큰 덕을 보앗던것은 사실이다 ..불미스런것에 대한&lt;br&gt;책임은 어느한쪽의 문제로 몰기는 그랫고&lt;br&gt;그나이가 내나이 채 40 이 안되던 시기엿던걸&lt;br&gt;나름. 그런시기엿다.&amp;nbsp;&amp;nbsp;남편과 사별한지 8년에서 10년쯤되던 시기엿던듯&lt;br&gt;아마 우리아이들도 뭐라 말은 않아도 마음고생들이 심햇다는것은 안다 그러고 그래도 아이들이&amp;nbsp;&amp;nbsp;그일에 대해서는&amp;nbsp;&amp;nbsp;모르는듯 해주는것이 너무 고맙기도 하다&lt;br&gt;그런데. 챙피하고. 남들의. 손가락질이고 간에 어쨋든. 아이들과. 먹구는 살아야. 햇고 그러러면.&amp;nbsp;&amp;nbsp;골짜기 밭을 매일같이 다녀야 햇다&lt;br&gt;그런데 마침 밭을 가렴 이장댁 밭근처를 지나야 햇고 &lt;br&gt;본의 아니게 자꾸 마주치게 된다&lt;br&gt;그런. 난처한 시기를 한두해 지난후 마침 골짜기 밭을 &lt;br&gt;우리밭근처서 목장처럼 소를 방목하는 이가. 500 만원에 밭을 사주겟다고 햇다&lt;br&gt;&amp;nbsp;&amp;nbsp;마침 잘됏다 생각에 팔고. 받은 돈은 마땅히 어찌 하기도 그냥 은해에 너두긴. 해서.&amp;nbsp;&amp;nbsp;이웃동네 몆집에서 소를 사주면 나중에 송아지를 낳아 송아지값을 나누는 방식을 제안해서. 그돈으로 전부 소를 3마리를 사서 한마리씩 두집에 나눠 맞기고&lt;br&gt;한마리는 우리집. 외양간에. 두고 우리가 키우기로 햇다..원래 있던 한마리 까지 두마리를 키우게 되엇다&lt;br&gt;나름 계획은 괜찮앗으나.&amp;nbsp;&amp;nbsp;나의 불행운은 계속 되엇다&lt;br&gt;갑자기. 백만원하던 송아지 한마리가 20 만원에도 안가져간다고 하는 상황이 되엇다 그러자 맏겨던 소를 두집에서 모두 끌어다 우리집외양간에 소를 두고&amp;nbsp;&amp;nbsp;도망치듯 돌아갓다.&lt;br&gt;어쩌랴.. 그분들의 마음이나&amp;nbsp;&amp;nbsp;내마음이나 매한가지. 아니겟는가&lt;br&gt;나중에 안. 사실은 당시 대통령 동생이&lt;br&gt;새마을운동본부회장인가를 히며. 호주에서 살아있는 소를 사와. 한국에서 몇달을 키워&amp;nbsp;&amp;nbsp;국내산 소로 판매하는 일을 추진하며&amp;nbsp;&amp;nbsp;소값폭락이 왓엇던것이다&lt;br&gt;어쩔수 없이 소를 네마리를 좁은. 외양간에서 키워야 해서 마당에 조그만 축사 하나를. 새로 지엇다&lt;br&gt;소가 네마리인들 소로 돈벌어 먹구 사는것은 물건너 갔지만 당시엔 전후 사정을 몰랏으니 시간이 좀지남&amp;nbsp;&amp;nbsp;소값이 회복될거라 여기고. 소는 소대로 키우고 농사도 해야 해서. 집에서 가까운 논을 얻어 수박농사를 지엇다 ..아이들 고모네가 수박농사를 짖기에&amp;nbsp;&amp;nbsp;도움을 받아 수박을 심었다&lt;br&gt;애들은 담배농사 보다 좋다며 조아라 하나&lt;br&gt;막상. 해보니. 수박값은 둘쑥 날쑥한것이 . 4~5년 수박농사를 지엇지만 큰재미는 못보앗다 그냥. 하루 하루 먹구사는것이엇다&lt;br&gt;&lt;br&gt;그런 와중에 둘째가 중학교를 졸업할따가 되엇는데&lt;br&gt;고등학교를 꼭 가고 싶다고 밤마다 애원을 한다&lt;br&gt;서울 큰애는 중학교만 마친다고 햇는데&lt;br&gt;&amp;nbsp;&amp;nbsp;죽은 남편의 사별한 전부인의 딸은 중학교만 졸업하는데&amp;nbsp;&amp;nbsp;네가&amp;nbsp;&amp;nbsp;결혼전&amp;nbsp;&amp;nbsp;낳아 데리고 들어온&lt;br&gt;아이만 고등학교를 보내면. .. 고민해봐도 당시로선&lt;br&gt;결정을 할수 없엇다..농고는 여학생은 전액 장학생이니. 농고라도 보내주거나 산업체학교라도 보내달라며. 서럽게 우는 딸은&lt;br&gt;..뿌리치고.&amp;nbsp;&amp;nbsp; 지금생각함. 당연히 보내주는게 맞다 &lt;br&gt;생각되나 그때는. 내가 그러지 못햇다 &lt;br&gt;아이에게 평생씻기 힘든 상처를 준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고교진학대신 대전에 미용학원에 등록시키고 &lt;br&gt;통근기차로&amp;nbsp;&amp;nbsp;6개월여 보냇더니&lt;br&gt;아이가 자격증이라도 따면 좋은데. 시험에 자꾸 떨어졋다 그런 와중에.&amp;nbsp;&amp;nbsp; 미용실에 취업햇다고 해서&lt;br&gt;한시름 놓앗는데..한두달인가 만에. 못하겟다고. 집으로 내려왓다&lt;br&gt;고작 열여섯짜리 조그만 아이가&amp;nbsp;&amp;nbsp;사회생활이 쉬울리. 없엇을것이다&lt;br&gt;하지만 어쩌랴. 살아나가야 하는것이.. 그렇다고&lt;br&gt;여러말은 안햇다..&amp;nbsp;&amp;nbsp;그날부터 한 일주일 밭일을 나랑 같이 아침일찍 밭에 나가&amp;nbsp;&amp;nbsp;때양볕에서 밭매고 엽순따고. 일을 시켯다&lt;br&gt;일주일을 밭일을 하고는. 대전으로 다시 올라가겟다&amp;nbsp;&amp;nbsp;이야기를 하곤 올라갔고 마침.&amp;nbsp;&amp;nbsp;남자원장이 꽤 크게 하는 미용실에 자리가 생겨 그곳에 쥐직햇다고 한다&lt;br&gt;한 5 년은&amp;nbsp;&amp;nbsp;미용실 보조만 햇엇던것 같다 아마 나이가 어리고 자격증이 없엇기에&amp;nbsp;&amp;nbsp;더. 더뎟을것이다&lt;br&gt; 그아이는. 60 이되어가는&amp;nbsp;&amp;nbsp;지금까지 미용일을 하는데도&amp;nbsp;&amp;nbsp;신경써서 혼령기에&amp;nbsp;&amp;nbsp;짝을 만들어주는 일을 신경못쓴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냥 저혼자 맘편히 사는게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십다&lt;br&gt;&lt;br&gt;아마 이시기가. 골짜기 밭을 아직 농사를 지던 시기엿엇다&lt;br&gt;&amp;nbsp;&amp;nbsp;둘째가 그래도 나름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준덕에. 그밑에 아이들도. 누나가 있는 대전으로 학교를 보낼수가 있엇고. 작은 얼마씩 벌엇다고 집에 올때마다 얼마씩 주고 가는 돈들이&amp;nbsp;&amp;nbsp; 우리살림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엇다만 그게 어디 그냥 받고. 끝날일인가 싶어&amp;nbsp;&amp;nbsp;&amp;nbsp;&amp;nbsp;언제부터는 둘째영의로 보험증서라도&amp;nbsp;&amp;nbsp;적은돈이지만 매월 나가고 있다&lt;br&gt;&lt;br&gt;이젠 골짜기 밭도 팔앗고&amp;nbsp;&amp;nbsp;소키우는것도. 소를 여러마리 좁은집에서 키우다보니. 새키를 출산하다 죽고. 야산에 나무에. 고삐를 묵어둔 소가. 빙빙돌아&lt;br&gt;고삐에. 감겨 죽는등&amp;nbsp;&amp;nbsp;여하튼 밭팔아 소산것은 결과적으로 망한셈이다&lt;br&gt;그렇다고. 울새끼들이 당장 밥을 굶 을수는 업엇다&lt;br&gt;당시 동네의 새로운 이장이&amp;nbsp;&amp;nbsp;영세민 신청을 함. 애들 학비도. 감멸되고 종종 쌀이나 밀가루도 주곤 한다고 해서 영세민이 되긴햇으나&amp;nbsp;&amp;nbsp;막내딸은 제법 공부도 잘하는데..여하튼 기억에 막내딸은. 학교에 생활보호대상자 지원을 따로 받지는 않앗던듯 하다 &lt;br&gt;여자아이라 자존심 문제등도..그나마 막내 머슴아는 &lt;br&gt;그래도 여자아이보단 덜하니&amp;nbsp;&amp;nbsp;그녀석은 중학고 고등학교를 기본학비는 면제 받앗다..언제부턴가&amp;nbsp;&amp;nbsp;그녀석은 제가 고등학교를 대통령전액 장학금. 받고 다녓다&amp;nbsp;&amp;nbsp;거스름을 피우곤 한다&lt;br&gt;그나마 다행이다. 그런것으로 기가 죽으면 안되는데&lt;br&gt;&amp;nbsp;&amp;nbsp;싶기에&lt;br&gt;막내아들은.&amp;nbsp;&amp;nbsp;말이 많은데 이눔도 나름.&amp;nbsp;&amp;nbsp;태어나고 곧 아빠가 죽어&amp;nbsp;&amp;nbsp;아빠얼굴도 모르고. 어려서 아빠가 없으니 누나셋에 엄마까지 여자들만 있엇던것이&lt;br&gt;아이에게는 나름&amp;nbsp;&amp;nbsp;성격등에 악영향을 줫을수도 있으나.&amp;nbsp;&amp;nbsp;말이 많고 종종 대들고 씩씩 고집을 부리기는 해도 큰 사고 없이 무난하다&lt;br&gt;어느덧 아이들은 이래저래 모두객지에 나가있다&lt;br&gt;서울큰애는. 안정된. 직장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햇으니. 다행이고&lt;br&gt;둘째는 몇년전부터는 미용사가 되어 급여도 꽤 받는듯하고&lt;br&gt;셋째는 전문대 유아교육 과를 나왓는데 그동네가. 모양은 좋으나 실제급여들이 박한듯 하고 반대로 스트레스는 심한듯 보여 보고있는게 왠지 안심이 안됫다&lt;br&gt;막내아들은. 공고졸업후 대학에 붙엇다. 학과가 아니라고&amp;nbsp;&amp;nbsp;다시 공부하겟다고 하는데. 2년째 공부를 하고있다..올해는 종합반학원에 보내두엇으니&lt;br&gt;좀 나을듯 하다&lt;br&gt;&lt;br&gt;이즈음. 시골집에는 나혼자만&amp;nbsp;&amp;nbsp;3~4년 넘게 남겨져 있엇다 낮에는.&amp;nbsp;&amp;nbsp; 수박농사와 가발만드는. 부업을 한창하던. 시기엿는데. 같은동네에 3년전쯤 사별한 홀아비를 동네 형님동생하며 지내는 형님이 중신을 한다&lt;br&gt;다늙어서..싶지만 그래봐아 아직 50 이 안된 때엿다&lt;br&gt;그집 죽은 아주머니(나와 비슷한 연배)도 잘알던사이엿고&lt;br&gt;키크고 장생긴 고등학생 남자애가 갑자기 병으로. 몇년적&amp;nbsp;&amp;nbsp;죽고서. ..낙심이 컷던지&amp;nbsp;&amp;nbsp;마음병인듯 어쨋든 병으로&amp;nbsp;&amp;nbsp;그아들을 따라갓던것을 잘알고 아직 막내딸은.&amp;nbsp;&amp;nbsp;고등학생인 상황이엇구 그집 살림은 당장 우리집 보다야 나아겟지만 그집도 없는 살림인것은 매한가지라.. 남들은 이왕신세 고칠것 같은 부자를 만라라고..&amp;nbsp;&amp;nbsp;뭐랄까 비아냥반 충고반 . 허나&amp;nbsp;&amp;nbsp;내신세에 언감생심이고 그제 낮에는 괜찮으나 밤에 넓은집에 혼자 있으면. 적막하고. 어떨때는 무섭기도 하다.벌써&amp;nbsp;&amp;nbsp;애들이 집을 모두 떠나 한달에 한번쯩 올까 하는게 3~4년이 되엇다&lt;br&gt;다른거 떠나 누군가 내옆에 있엇음하는 맘이&amp;nbsp;&amp;nbsp;이번중매에 신경쓰이는거다&lt;br&gt;그리고 그집 양반도 원래 잘아는데..뭐 무난한 성격의 사람이엇다 경우도 알고&lt;br&gt;그런데 문제는. 애들이 어찌 생각할까 싶다..애들이 난리를 치면 그걸 그냥무시하고 갈 생각은 없다&lt;br&gt;그래도. 대전에 셋째 딸과 아들이 동의하겟다고 엄마생각대로 하니. 좀 쉬워졋다&lt;br&gt;&amp;nbsp;&amp;nbsp;서울첫째한테는 직접 찿아갔다 사위도 있기에 조심스레 이야기햇더니. 첫째도&amp;nbsp;&amp;nbsp;순순히 동의해주엇다&lt;br&gt; &lt;br&gt;상대방. 집안의 자녀와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 햇지만&lt;br&gt;왠지 통보같은 분위기엿는지도 모른다 그덕에 우쨋든 살림을 합쳣고 결혼식이나 혼인신고는 일부로 하지않고&amp;nbsp;&amp;nbsp;조용히 같이. 대전에가서 보문산공원도 거니는등. 간단한 여행을 하는것으로 대신햇딘&lt;br&gt;혼인신고는 아직 결혼안한 자식들이 있어 애들앞길에 누가 될까 싶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앗다만 부부로의 삶을 살앗다&lt;br&gt;&lt;br&gt;두집이 한집이 되엇어도 아직 나어게 뒷바라지 할애들이 있기에. 몆년전부터 하던 식당일이나 청소일등을 계속 햇고 더블어. 그집에는 밭농사들이 있어 간만에 다시 담배농사일도 해야햇다&lt;br&gt;&lt;br&gt;평소처럼 어쩜전보다 더열심으로 살앗던시기엿다&lt;br&gt;누군가에게&amp;nbsp;&amp;nbsp;언혀가는 삶을 살수는 없엇기 때문이다&lt;br&gt; 농사일과.&amp;nbsp;&amp;nbsp; 청소 등을 병행하는 중에 아들은. 공대를 졸업하고. 꽤 큰기업에 취직을 하긴햇다 아이엠에프 시기엿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lt;br&gt;&lt;br&gt;그전에. 셋째딸이 먼저 결혼을 햇교. 서적상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햇는데 맘같아서는 결혼할때. 넉넉히 지원해주면 좋겟지만 그러지 못햇다&lt;br&gt;그래서인지 시집살이를 좀하는 것도 같다만&lt;br&gt;어데나 사람사는데는. 쉽지만은 않은것이 당연한것이다&lt;br&gt;막내아들은 대학중에 병역특려란것을 해서 군대를 대신햇다. 녀석은 군대를 가서 고생을 햇어야 싶기도 하나 산업체에서 군대대신 일하는것도. 고생은 매한가지일것이다&lt;br&gt;문제는 이녀석 그리 고생해서 번돈을 주식을 삿다가 아이엠에프 닥치며 다 말아먹은 모양이다&lt;br&gt;그러와중에 대학3학년에. 결혼을 하겟다 여자애를 데려왓다..우째해서. 2천짜리 전세집을&amp;nbsp;&amp;nbsp;다니는 대학근처에 얻어주엇다..결혼을 허락하는 대신 학비는 지원하되 생활비는&amp;nbsp;&amp;nbsp;너희들이 벌어서 생활하는 조건이엇구.&amp;nbsp;&amp;nbsp;아들눔이. 내가 예전에 얻어준&lt;br&gt;단칸방 전세 보증금. 500 만원인가를 삥당한것과&lt;br&gt;병역특례하며 벌어둔돈을 주식투자햇다. 겨우남은 얼마로. 둘째사위의 도움으로. 영동에서 중고서적 매장을 해서. 임시. 먹구살겟다 한다&lt;br&gt;뭐든 계획대로. 되진 않는법 영동에서 6 개월정도 한쑤 구미역 광장에서 임시 천막에서 한 일년 넘겨 하며. 머느리가 낯에&amp;nbsp;&amp;nbsp;가계를 보고 학교를 마치곤 아들이 교대를 하는모양인데..&amp;nbsp;&amp;nbsp;저러다 취업은 할까엿는데 그어렵다운 아이엥 에프에. 꽤 큰기업에 시험을 치고 들엇갓다고 해서 여간 기쁘지 않앗다&lt;br&gt;영동에 있던 공장인데 그공장에는. 우리마을. 자식들도 해당 기업에 있길해도 대졸 공채로. 관리직으로 입사한 적은 없엇다&lt;br&gt;남편도. 매우 기뻐햇다..예전에. 그집에 큰아들이 그기업에 서류를 넣엇다 실패햇던적이 있고 지금은 농협은 다니기에&amp;nbsp;&amp;nbsp;더 대딜해보엿던지도 모르겟다&lt;br&gt;&lt;br&gt;아들은. 막상회사에 들어가곤. 아침일찍나가 ㅎㄷᆢ일도 없다시피 출근 하는등. 그러면서. 힘들어 한다&lt;br&gt;&lt;br&gt;그런시기에..예전에 우리밭을 사준이가 소유한 건물. 청소일을 한지가 몇년되엇다&lt;br&gt;그집도 마누라가 기가 쎄다 보니 남편이 기를 못피고 살고 있엇다 15년전에도 그랫엇는데&lt;br&gt;어쨋든. 누구나 나와 마주치는 이들은 일들이 쟓풀렷음 하는데..&amp;nbsp;&amp;nbsp;말이 건물주지&lt;br&gt; 삼층에서 하는 부폐장사가 안되다 보니 여간 힘든 모양이엇다&lt;br&gt;아침에 3시간 저녁에 3시간 청도 4층짜리 건물의 청소와 쓰레기들을 정리하고서 받는게 65만원이인가인데 어쨋든 크건작건 매달 일정하거 들어오는 수입이 중요하기에 계속 일을하고 있다&lt;br&gt;낮에는 남편과 농사일을 계속 하고 있다&lt;br&gt;부모들이 열심이 살아야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딜곳이 되는것임을. 아무것도 없이 살앗던 내가 누구보다 더알기에.. 살아있는한은&amp;nbsp;&amp;nbsp;쉼없이 나아가지 싶다&lt;br&gt;우쨋든 아들이 영동에 취업햇기에 우리가&amp;nbsp;&amp;nbsp;몇년째사는 빌라에 빈집이 있어 그집을. 기존에 전세금 2천에 2천만원을 우리(남편과 내가)가 지원해. 4천만원짜리 집을. 사주엇다&lt;br&gt;&lt;br&gt;그곳에서 2~3년살고선.&amp;nbsp;&amp;nbsp;둘째 딸이 바람을넣어&lt;br&gt;대전에서 둘째와 며느리가 같이 아파트를 얻어 어린이집을 하겟다는데..&amp;nbsp;&amp;nbsp;맘에 안든다&lt;br&gt;같이 일을 하다봄 분명틀어질수도 있은것인데&lt;br&gt;남들이야 괜찮으나.식구들끼리는 관게가 매우 않조아 질수 있기 때문이다&lt;br&gt;그런데도 굳이 하겟다니..결국 얼아뒤 둘은 서로 찟어진 모양이다.&lt;br&gt;&amp;nbsp;&amp;nbsp;잘내색들은 안해도.&amp;nbsp;&amp;nbsp; 서로가 서운함이 없엇으랴&lt;br&gt; &lt;br&gt;그뒤 몆년이되어. 대전에 둘째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아파트를 대춝끼어 사서 어린이지집을 하겟다 한다&lt;br&gt;기억에 그때는&amp;nbsp;&amp;nbsp;때로 지원은 하지 않은듯 도 하다&lt;br&gt;어자피 종자돈. 4천은 지원한거구 당시 아파트가 1억 3천청도 여서.&amp;nbsp;&amp;nbsp; 저희들끼리 할수 있다는게 다행이기도 하다 그시절이며 아들도 대학졸업후 5 년정도 한직장을 잘다니던 때엿으니..&lt;br&gt;다만&amp;nbsp;&amp;nbsp;당시에. 집을 아들명의가 아닌 며느리 명의로 하게끔 내가 바람을 넣은것은. 좀후회로 남는다&lt;br&gt;&lt;br&gt;나중에 아들네는 아파트한채를 더 구입햇는데도 그집 마저&amp;nbsp;&amp;nbsp;며느리 명의로 햇다고 한다&lt;br&gt;아들한테는 네이름으로 되어있음 또 대출받아 주식투차한다고 다말아먹을지 모르니&lt;br&gt;며느리명의로 하는게 안전하다고는 햇지만&lt;br&gt;상황은 어찌 변할지 모르는것인데.&amp;nbsp;&amp;nbsp;벌써10 년정도전에 아들이 허리가 다친후. 그래도 하는일이 육처를 쓰는일이아니라.&amp;nbsp;&amp;nbsp;계속 생활비는 준모양인데&lt;br&gt;아들이&amp;nbsp;&amp;nbsp;언제부턴가 나의 어린시절 가족들이 억울하게 죽은 일들을 조사한다며 제주도도 몇번 왓다갔다오고 국가배상심의란것도 진행하고 억울하게 죽엇지만 4.3 희생자로도 등재안되어 있던 나의 오빠와 동생을 희생자로 인정받게 하는 일들을 하는것 까지는 좋은데. 해당일에 정신이 팔렷는지&lt;br&gt;먹구사는일에 소홀햇던것잇지...아니지. 지팡이 짚고 다니며 나름 8년넘게 생계를 끌어온게 나름 기특하다고도 할수 있지만 어쨋든 가장은 아파도.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것이니..&amp;nbsp;&amp;nbsp;아들은 몸이 아픈이후로 집에서 나와 혼자생활을 근 10년정도 해온. 모양인데.&amp;nbsp;&amp;nbsp; 거기에 2024년 1월부터는 생활비도 안보내는 모양이다..딴에는 잠시&amp;nbsp;&amp;nbsp;힘들엇을때 집 담보 대출을 받으면 1~2천만원정도는&amp;nbsp;&amp;nbsp;별 탈없이 지나갈건데&lt;br&gt;막상 어려워지니 집두채가모두 며느리꺼구 자신이름으론 없으니. 잠시&amp;nbsp;&amp;nbsp;빌렷다 갚을수도 없엇던것이.&amp;nbsp;&amp;nbsp;나름 큰 상처를 입은듯 히다&lt;br&gt;며느리도 나름 입장이 있엇을것이다만&lt;br&gt;&lt;br&gt;어쨋든 아들 눔은 나름 건들면 성과를 내고 있는것은 사실이라 한편으론 큰힘도 되지만 저들 부부끼리 잘살아야 하는데..&amp;nbsp;&amp;nbsp;며느리도 보통은 아니나. 내아들은&amp;nbsp;&amp;nbsp;그냥 봄 정상이 아닌것처럼 보일정도로 둘다 보통들이 아니니&lt;br&gt;&lt;br&gt;혹여라도 이혼이라도 하자고 함 어쩌냐 아들에게 말하니. 집이. 두채가 마누라꺼라 마누라가 똑똑해 절대이혼 하자곤 않을거라곤 웃으며 하긴 하나 잘살아야 하는데. 무자직이 상팔자라더니..&lt;br&gt;&lt;br&gt;&lt;br&gt;다시 2천년대 중반으로가서. 건물주는 장사가 안되서 건물은 서울사람한테 넘어갔다&lt;br&gt;그러고도 계속 건물청소를 해오다 한번더 건물의 주인이 바뀌는 시점에 작은 교통사고가 나서 어쩔수 없이 해당 건물 청소는 그만둔것이 2010년대 중반인듯. 하다..그뒤로 식당일을 종종. 돕거나 농사일을 하곤 햇지만 다리가 마니 불편해 걷는게 힘들어 주로 앉아서 하는 일만 해왓고 7~8년전부터는&amp;nbsp;&amp;nbsp;군에서 하는 노인대상 환경미화 활동을 하며.&amp;nbsp;&amp;nbsp; 뭐 그래도 계속 얼마라도. 계속 소득활동을 해와서 국민연금 한 30 만원과 기초연금 25만원 정도에 환경미화로 2~30 만원. 어쨋든 집은. 내집으로 되어 있으니 월세는 나가지 않으니&lt;br&gt;영감하고. 같이 산지가 33년인가 되엇다&lt;br&gt;아 그리고 중간에 청소하고 식당일하며 모은돈을&lt;br&gt;속아도 땅을 몇개 사두엇는데 &lt;br&gt;아들에게 이야기 햇더니 기획부동산 이라고 한다&lt;br&gt;마음이 무너졋는데 그래도 아들 눔이&lt;br&gt;&amp;nbsp;&amp;nbsp;넘아파말라며 엄마인생에서 부자되보겟다는 꿈을 언제 꿔보앗냐고 그래도 해당 부동산을. 사면서 얼마동안은 부자가 될수있겟다는 희망이 있엇을것이니 속앗다 생각마시고 그냥 부자되는 꿈값이엇다 하라며 웃어준다.. 물론. 내가 벌은 돈이긴 해도 사람이 그런게 아니라. 아들한테 줄돈은 없어도.사기당할돈은 있어나 보오. 람. 그럴텔데&lt;br&gt;그래도 아들이 내입장을 생각해준다&lt;br&gt;아들에게 가져갈수 있음 가져가라햇지만&amp;nbsp;&amp;nbsp;농업인이 아님 쉽게 아들에게 넘겨주지도 못하고. 땅하나에 여러주인들로 나눠져 쉽게 팔수도 없는 땅인것이다&lt;br&gt;아들한테는 다른 사람들어게. 비밀로 해달라고 햇다&lt;br&gt;의외로 입이 가벼운듯해도 필요할때는 말을 옮기고 하지는 않는듯하다&lt;br&gt;&lt;br&gt;말이 그러지 애들 친부와. 함께 산것은 고작 4~5년인것이니...영감이나 그집 애들 큰아들.클 딸 작은딸 그리고 우리집에 아들 딸둘과. 전처 소생의 큰딸. 이들중. 누구하나 안아픈 손가락이 될수 없기도 하다&lt;br&gt;그런데. 작년부테는 순가순간 기절을 하곤 해서 여간. 불안하지 않다.&amp;nbsp;&amp;nbsp;살앗을때&amp;nbsp;&amp;nbsp;애들 특히나 그들중에도 여의치 않은 애들에게 작더라도. 얼마씩 좀 쥐어주고 갔음 해서 아들이 신쩡햇다던 국가배상건은 오래뒤로 미뤄질 모양이고. 오빠동생에대한 보상이라도. 빨리나옴 좋은데 그것마저 내년에 야 나온다고 하니&lt;br&gt;그땍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싶은데&lt;br&gt;왠지 오늘을 이상한 생각이 든다&lt;br&gt;토요일까지. 환경미화일을 햇는데&amp;nbsp;&amp;nbsp;요즘 밖억 나갓다 기절하거나 급똥이 나와 바지에 싸기도 햇엇고 금요일인가 기절햇다 병원에 갔다 왓는데&lt;br&gt;어쨋든. 다믐주 다시 병원에 한주정도 입원을 할까해서&amp;nbsp;&amp;nbsp;7월한달은 담당팅장에게 부탁해 휴가를 얻엇다&lt;br&gt;오늘은 6월마지막날 인데. 왠지 영감한테&amp;nbsp;&amp;nbsp;평소와 달리 등종밀어달라고 햇다 웬지 오늘은 좀더 깨끗하게 씻고 싶엇다&lt;br&gt; 영감은. 아침먹구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점말 노인정으로 출근한다 노인정을 가는것인지 애들 밭에 일을 도우러 가는것인지&lt;br&gt;영감의 큰아들이 막농협에 들어갈때 우리가 같이. 살앗는데..올해 큰아들은 농협을 정년퇴직하곤&lt;br&gt;농사일은 하는데 내가 봐선. 아들하고 영감하곤 아마 일을 한들. 서로 다른 밭에서나 할것같다.&lt;br&gt;어찌. 딱 내마음 만 같으랴.. 부부부모자식 간에도 쉽지는 않을게. 어쩔수 없는듯하다 그나저나&lt;br&gt; 나의 발과 같은 세발자천거를 타고&lt;br&gt;농협을 잠시들려 만기인 정기예금을 다시 재계액한후&lt;br&gt;마트에가서 냉장고에 넣을것을 좀사야 하는게 왠지 마니 힘들다. 더운 바깥에서 시원한 마트에 들어오니 시원은한데 갑자기 축처진다&lt;br&gt;아 일어나야 하는데..갑자기 아팟던 통증이 다사라졋다. 제주에서 엄마이모가 경찰에 끌려가는모습. 아빠가 마지막으로 문밖을 나서는 모습. 고추당단지만들고 부산행배를 타던때&lt;br&gt;둘째애를 데리고 지아부지 한테 갔다 그냥왓던인&lt;br&gt;애들아버지랑 첨 본날&lt;br&gt;아들 낳앗다 조아라 하는모습&lt;br&gt;담배농사짓다 소가죽엇던때&lt;br&gt;관광버스타고 고시동굴 가서 사진찍엇을때&lt;br&gt;아들이 대학에 붙엇던 때 &lt;br&gt;영감하고 처음데이트한다며 보문산공원을 갓을때&lt;br&gt;아들이 결혼할때등의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lt;br&gt;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인듯 하다&lt;br&gt;너무 가볍고 편안하다 예들아. 엄만는 오늘까지 안듯하다&lt;br&gt; 잘들 있어라 아들 딸 영감도. 듣기싫은 잔소리 없으니. 잘있으소..&lt;br&gt;&lt;br&gt;제주도 애월 고성리 에서. 홀로 떠나와 충북영동에서. 평생을 살앗던 강길하 여사님의 삶은 대략. 이야기형식으로 꾸며 봣음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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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8 Aug 2025 03:03: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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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오늘. 큰누나랑 라면하고 바꿧다</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5</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내나이 불과. 일곱살 되던해 겨울.&amp;nbsp;&amp;nbsp;썰매를 타느라 정신없이 놀다가.오후 다섯시쯤이 되어서야 집에를 갔는데&lt;br&gt;왠걸 내가 젤 좋아햇는지는 몰라도 어쨋든 힘으로. 도저히 못이기나 젤이쁜 누나가. 서울에서 이모가 와서. 서울로 데려갔다는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갑자스레 &lt;br&gt; 무슨일인가. 나랑은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렷다&lt;br&gt;한참을 소리내며 울엇는데&lt;br&gt;이모가 라면을 사다 놓고 갔다면. 엄마가. 라면을 끊어. 주시는데..왠걸 너무 맛잇엇다&lt;br&gt;그래서 더 슬펏다. 누나를 마치 라면 몇봉과 바꾼것같은 비참함이. 그어린 나에게도 느껴졋다&lt;br&gt;그뒤로도 종종누나가 생각날때면. 누나를 라면과 바꾸고 그라면을 맛잇게 먹엇던 나의 배신을. 미워하곤 햇다..사실 큰누나의 엄마는 누나를 닣고 얼마안되 돌아가셧기에. 우리완 생모는 달랏지만&lt;br&gt;엄마는 유독 큰누나는 매일 같이 긴머리를 예쁘게 따주곤 햇다..다른 누나들은. 단발머리엿다..&lt;br&gt;지금 생각해봄. 친딸이 아니어서 더 신경쓰인것인지도 모르겟으나 나도 그시절 큰누나가 젤 조앗는데..&amp;nbsp;&amp;nbsp;라면하나랑 바꾼것 같은 아픈 상처는 50넘은 지금까지도 생각나곤 하는데..지금생각해보면 당시 울엄마의 심정도 서울이모집에 갔다가&amp;nbsp;&amp;nbsp;거기서 살겟다 눌러앉은 아이를 보며.&amp;nbsp;&amp;nbsp;나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한다..&amp;nbsp;&amp;nbsp; 그래서. 훗날. 농고는 여학생은 공짜 라며. 농고라고 가고파햇으나 끝내 못간 둘째누나가 아마 어느정도는 희생양이 됫을것이다 서울간 첫째가 중학교만 갔으니..&lt;br&gt;기준을 첫째와 맞춘듯 하다... &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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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8:28: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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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울엄마) 오빠. 강길우는 열다섯에  굶어죽엇다</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아버지가. 경찰을 그만둔것으로 빨갱이로 몰린후&lt;br&gt;우리가족은 49년1월에 외조부&lt;br&gt;2월엔 엄마와 호적도 못올린 젓먹이 동생.그리고 &lt;br&gt;이모&lt;br&gt;9월경에. 도망다니던 아버지가 잡혀간후 죽임을당햇다(행불)&lt;br&gt;그런이후로 나보다 네살쯤많은 오빠는 이상해졋다&lt;br&gt;전에는 나랑도 잘놀앗는데 그뒤론 오빠~같이 놀자하면 ..무서워하며 쏜살같이 도망가선 숨곤햇다&lt;br&gt;동네 사람들이 미쳣다고 놀리기도 하고 오빠들이 울오빠를. 데려다 때리는 일도 잦다&lt;br&gt;그러던 어느날. 부모님들이 죽고는 나는 외할머니랑. 살앗고 오빠는 큰집에 살앗는데 어느날 아침에 이웃집 애기를 돌봐주고 있는데. 너네 오빠가 죽엇으니 빨리가보라 해서..큰집으로 달려갓더니&lt;br&gt;어디 창고에 숨어있다 창고에 갖힌체 굶어죽엇다고 햇다..&amp;nbsp;&amp;nbsp;아마 큰집의. 오빠들이 괴롭히니 그걸 피해 외진곳에 숨어있다 갖혀서 굶어&amp;nbsp;&amp;nbsp;죽음에 이른듯 싶다&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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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6:49: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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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울엄마가 농약을. 드셧다..우짜노</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말은 나름 청산유수엿다&lt;br&gt;그래서 엄마한테. 맞기도 많앗지만. 맞으면서 잘못햇다는 말을 잘 하지 않고 종종 가슴후벼파는 소리도 많이 햇다&lt;br&gt;그날도 뭔가로. 아마. 축구공인가를 사달고&amp;nbsp;&amp;nbsp;땡강을 부린것 같기도 하고. 그시절엔 축구공만 사줌. 할렐루야 팀. 이영무 선수처럼. 될듯 싶어지 아마..&lt;br&gt;그런데 그전에. 몇번을. 사줫다. 구멍나고 잊어먹구. 한터엿고..아마&amp;nbsp;&amp;nbsp;혼자. 살림을 책임지는 엄마 주머니는&amp;nbsp;&amp;nbsp;텅비어있고 담배돈이 들어올려면 근 반년은 지나야 되는 형편이엇으니..&amp;nbsp;&amp;nbsp;엄마는 돈없다 모사준다..지난번에 사준지 얼마되도 않는다고..하시는데.&amp;nbsp;&amp;nbsp;싸가지라곤 밥말아자신 초딩 3~4학년쯤 되엇나 햇던. 나는 부모가 되갔고 그것도 못해주냐며..&amp;nbsp;&amp;nbsp;&amp;nbsp;&amp;nbsp;.그럼 엄마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제런것을 낳아서..로 받아치심..부모라고 다부모가 아니다며 낳앗음 책임을 지어야지..라고 지금 생각함&amp;nbsp;&amp;nbsp;&lt;br&gt;아주 질근질근 할것같이 엄마의 속을 마니 후벼팟던날 엄마가.&amp;nbsp;&amp;nbsp;엄마가 필요엾음 너희들끼리 잘살아보라며..농약을 마시고 죽겟다며..&amp;nbsp;&amp;nbsp;농약을 입에 대곤 집뒤에 비닐하우스로 올라가곤 내려오질 않으신다..그상황에서 이 미친 아들눔은 엄마 죽음 어쩌지..당장 낼부터 어찌 사나 이런생각을 하고 있엇지만 해답이 당연히 없엇다.. 아주 쪼꼬만하게 그런와중에도 계산을 햇다..&amp;nbsp;&amp;nbsp;아주 무서운눔 이엇다우쨋든 그날은 백기투항하고 비닐하우스로 올라갓더니..엄마가 쓰러져 계셧다.&lt;br&gt;모시고 내려와서 엄마람 우리 남매들은 여하튼 감정이 복받쳐. 서러 안고 많이 울엇던 기억이 난다&lt;br&gt;낭중에 엄마한테 당시상황을 물으니 농약병을 입에 갔다 댓더니.&amp;nbsp;&amp;nbsp;쎄하고 역한 냄새가 강하게 올라와 입만대엇다 하신다..그래도 자식눔들이 하우스를 엄마를 살리겟다 올라가지 않앗담 사람이란게 무슨 생각을 햇을지 모른다..우리삶에서. 가급적&amp;nbsp;&amp;nbsp;극단적 상황까지 몰고 가선 안되며..혹여라도 누군가. 극단적상황으로 갈때는 적당히 퇴로를 열어주는 지혜를 배울수 있엇다. 다만 그 싸가지 없던 자식눔은&amp;nbsp;&amp;nbsp;오십이 다되서야 자신의 엄마는. 정말 세상에. 낳아놓고 모두 떠나.&amp;nbsp;&amp;nbsp; 낳앗다고 다 부모가 아니란 말대로라면.. 그냥 스스로 버려져 온전히. 어른이 된것이니.. .그분은 받은게 없으니. 싸가지가론 어데 쌂아 먹으려해도 없는 아들눔에. 평생 배푼것은. 그냥. 어디서 받아서 준것이 아닌. 창조해서. 배풀고간&amp;nbsp;&amp;nbsp;세상에서 가장존경받아도 될 울엄마란걸&lt;br&gt; 다늦게 나마 알게되엇다.. 그싸가지라고 하나없는 아들눔이&lt;br&gt;&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그림산책</category>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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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6:31: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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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의 소원은 괴일농사 짖는것</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담배농사는 땅을갈고 이랑을 만든후&amp;nbsp;&amp;nbsp;담배심을곳에. 홈은 낸후. 담배를 심고 물을준후 흙을 덮은후 &lt;br&gt;비닐멀칭을 씌운다&lt;br&gt;그런후 3주쯤 지나면 비닐속담배가 크면 비닐. 구멍으내곤.. 담배줄기를. 비닐밖으로 하나하나 꺼낸후 다신 비닐 틈 을 흙으로 막는다&lt;br&gt;그런후는&lt;br&gt;3~4번정도를 옆순을 따고. 농약도 몇번을 한다&lt;br&gt;한여름에 담배잎을 따는데..한번에 다따면 편하나 아랫잎부테 순차적을 4~5회걸쳐 따내는거라 여간 고역이 말이 아니다 거기다 담배는 끈적끈적 한 액이 몸에 묻기에.. .그런데.&amp;nbsp;&amp;nbsp;젤 안좋은것은. 사과 포도 수박처럼 먹고싶을때 먹지를 못한다는것이엇다(사과 나 포도 수박 농사짖는집은 맛나는걸 언제든 먹으니 좀 부러웟어야지..)&lt;br&gt;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과일농사짖는 거엿다 &lt;br&gt; 소원은 아래목골 밭을 팔고. 엄마가 논을 얻어 수박농사를 지면서 드디어 이루어진것이다&lt;br&gt;이왕에 수박농사니 ..원두막도 필수인것인데&lt;br&gt;울엄마 솜씨론 원두막은 무리고 천막을 이용해 텐트같아 만들어 원두막을 대신햇다.&lt;br&gt;나름 수박농사때는 어쨋든 원없이 먹엇던것 같다&lt;br&gt;다만 시골에서 농사를 짖는데는. 최소한 경운기는 필수품 인건데 당시에도..울집에 경운기가 없다 보니&lt;br&gt;밭을 쟁기질..소독. .물주기. 수확해서 운반등등에 매번&amp;nbsp;&amp;nbsp;놉을 얻어. 경운기를 빌려 썻기에..손익구조상 여자인 엄마 혼자서 농사짖는것은 매우 이익을 내기 힘든구조 엿던것은 어쩔수 없엇던것 같다&lt;br&gt;이러나 저러나 엄마한테는 돈이 안되기는 매한가지엿도 어쨋든 우리들의 복지차원에서 만족스러웟던게 수박농사엿던것은. 분명하다&lt;br&gt;울엄마가 수박농사 짖던시절도 한번기억 해봣다&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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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4:35: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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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네 관광갔다 오시는 날은 울엄마는 항상우셧다</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80년대 시골에선 일년에 한두번 관광차를 대절해. 동네 어른들 모두가 관광을 갔다오곤햇다&lt;br&gt;부곡온천.고시동굴. 여수 등등 ..&lt;br&gt;그런데 문제는 관광갔다 저녁이되어 집에 오실때는 술도 드셧고. 그런날은 집에 오셔서 자주 우셧던 기억이 난다&lt;br&gt;울엄마가 그시절 나이가 40 이 채 안된시점이니&lt;br&gt;당시에는 몰랏지만&lt;br&gt;지금내나이 50 이 넘어가니.. 서른에 혼자가 되셔서&lt;br&gt;십여년을&amp;nbsp;&amp;nbsp;혼자 살고 있엇는데&lt;br&gt;관광이라도 간다면 다들 부부동반이니..&amp;nbsp;&amp;nbsp;종일 그속에서. 우째 술도 먹게 되니 아마. 감정 이란게&lt;br&gt;아마 외로움이 많이 밀려왓을것이. 당연하다 싶다.&lt;br&gt;엄마는 20 여년동안 애들을. 어느정도 학교를 마치게한후. 50 근처에서. 같은 동네에.부인과 사별한&amp;nbsp;&amp;nbsp;아저씨와. 동네 아주머니의 중매로 재혼을 하셧고 그후 33년간은 두분이 아웅다웅 티켝태격하며 서로에게. 힘이되며 외롭지는 않은 삶을 사시다. 얼마전 돌아가셧다&lt;br&gt;길이 한번 어긋남. 금새 벌어지듯&amp;nbsp;&amp;nbsp;경찰들에 의해 고아가 되며 순탄한 긼에서 어긋나 평생을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살다간 제주 애월고성리&amp;nbsp;&amp;nbsp;강수헌의 딸&lt;br&gt;울엄마&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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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3:56: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엄마를 학교에 불려올렷던 두번의 기억</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30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한번은 초등학교 2학년때.&amp;nbsp;&amp;nbsp; 그림일기검사를 매주 &lt;br&gt;한번씩하는데. 매일매일쓰지 않고 검사하기전날 몰아서 쓰곤햇는데&lt;br&gt;어제는. 하루종일.&amp;nbsp;&amp;nbsp;소떼긴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수영하다 저녁때. 잠잠기전에 일기를 다쎳어야 햇는데.&amp;nbsp;&amp;nbsp;수영을 오래해서 피곤해선지 그냥 일찍 잠이 들엇다..그렇다고 아침에라도 일찍일어낫다면 모를까..&lt;br&gt;우짜지..하다 떠오른 생각이 지난번 일기검사를 할때&amp;nbsp;&amp;nbsp;깜박집에 두고 왓어요 하는 친구가 있어는데..그럼내일 가져와 검사받어 라고 선생님이 손바닦을 때리지 않고 지나가던게 생각낫다&lt;br&gt;&amp;nbsp;&amp;nbsp;&lt;br&gt;그래서 나도 그방법을 쓰고 학교갔다와 밀린거 다쓰면 되겟다 싶어&lt;br&gt;학교에 빈손으로 갔는데&lt;br&gt;계획처럼 모두 이뤄짐 재미가 없어서인지&lt;br&gt;오늘은 선생님이 ..너 일기 안쎠놓고 거짓먈하는거지&lt;br&gt;하며..손바닦을 내밀라고 한다&lt;br&gt;그래서 어자피 업질러진물 ..아니다.분명 써놧다&lt;br&gt;쎄웟다.. 이눔마가 지금보니 싸자 기질이 있엇던듯 하다..&lt;br&gt;그러자 그 여자선생님은. 그래 그럼 집에가서 가져외ㆍ 하는것이다.. &lt;br&gt;이양반이..집이랑학교랑. 4 킬로는 되는걸 뻔히 아는 양반이...&lt;br&gt;우짠다냐..알앗다며 학교를 나왓는데 마침 주머니에는. 그날때라 버스비. 70 원인가는 있엇는데&lt;br&gt;뭐 굳이 버스까지. 타고 82. 갔다올 기분은 아니엇다&lt;br&gt;문방구에들러. 10 원에 2개정도 하는. 사탕과 껌의 중간쯤되는 불량식품을 50 원어치 사서 주머니에 넣고. 질겅질겅 싶으며. 투덜투덜 집에 갔다&lt;br&gt;&amp;nbsp;&amp;nbsp;왠일로 집에 엄마가 있엇다..&amp;nbsp;&amp;nbsp;일단 빵에 짱박혀. 밀린일기를 3~40만에 대충 써서 분량을 마친후. 학교를 가는데 왠지 오널은 학교를 가기싫어 오늘 학교안가면 안되냐고 엄마에게 사정을 햇으나&lt;br&gt; 학교안감. 큰일나듯. 쫏아오시는것이엇다&lt;br&gt;이제 안오겟지 싶어 뒤를 돌아봄. 계속 오고&lt;br&gt;이제안오겟지 뒤를 봄 또오고 하셧다&lt;br&gt;아마 그날 엄마가 따라오지 않앗담 그날은&amp;nbsp;&amp;nbsp;아마 재끼고. 마을을 산길로 넘어가는 골자기에 있는 딸기밭에 가서 서리나 해서 먹엇을지도. 모른다(아니지 엄마가 따라나서지 않앗음 정신없이 학교로 달렷을지도..되려 엄마가 따라오니. 되려 어그짱이 나기도 햇엇던들)&lt;br&gt;꾸역꾸역 한시간 가까이 걸어 학교에 왓는데 엄마가 교실까지 결국 따라왓고.. 선생님을 뵙고 가셧다&lt;br&gt;잘은 몰라도&amp;nbsp;&amp;nbsp;당시 엄마는 선생님께 2천원인가 3천원을. 안받겟다는 선생님께 꾸역꾸역 억지로 드리고 온 모양이다. 참고마운것이..80년 당시로도 2천원 3천원이 큰돈은 아니엇다.&amp;nbsp;&amp;nbsp;당시선생님들 월급이 25~35만원정도 할때엿으니 ..그런데도&lt;br&gt;어쨋든. 관심있게 선생님이 봐주신(뭣한이 같음 너무 적은 돈이기에 어쩜 기분상해 햇을수도 있엇을건데)덕에. 그해여름방학. 과제물 상을 첨받아 봣다 물론 방학과제는 누나들의 도움받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제출햇던것도 원인이긴하나..전부제출한 친구들은 여럿됫는데..&amp;nbsp;&amp;nbsp;반에서 3명정도만 주는 상을 받앗으니..&amp;nbsp;&amp;nbsp;..어쨋든. 그선생님은 많이 고마웟다&lt;br&gt;2학년 겨울방학 끝나고. 한주일을 엄마고향인 제주를 갈때 따라갔는데..선생님이 제주도 가는것도 학교일주일 더나오는 것만큼 큰 교육이 된다며. 결석처리도 하지 않은덕에. 개근상을 받앗고 그덕에 초등중등 고등을 모두 개근을 햇다..&lt;br&gt;&lt;br&gt;또한번은 공고2학년시절. 열댓명이 부모님을 학교로 오게햇는데&lt;br&gt;학생들에게 부모님을 오라고 하는게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엇다..&amp;nbsp;&amp;nbsp;뭐 잘해서 오라고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lt;br&gt;어쨋든 약속한날 부모님들이. 열댓분 불려와 면담을 하고 선생님과 근처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해어졋다고 햇다&lt;br&gt;불려온 이유인즉슨. 수학여행을 가지 않겟다고 수학여행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친구들이 불려온것이다 집에선 수학여행경비를 타고는 그돈으로&amp;nbsp;&amp;nbsp;요상한 고고장이나 롤러장. 혹은 술값으로 탕진할까. 확인사살하겟다는 뜻으로 부모님들께 확인하고자 불러들엿던것이다&lt;br&gt;나는 당시 단과학원도 다니고 있엇고 해서 엄마한테는 수학여행안가겟다고. 미리 야기를 햇엇기에..다만 당시에 성적이 시골에서 중학을 나름 공부좀한다는 소리듣다 대전에. 공고에 와선 학교성적이 50 명중 40등. 안팤으로 바닥을 기고 있엇기에..그런눔이 대학을 가겟다고 하니 그걸 확인하겟다고 나는 선생님이 불럿다고 햇는데&lt;br&gt;성실하고 엻심이는 하고 있다고 걱정말라며&lt;br&gt;유일하게. 나만 수학여행 경비를 삥당하지 않앗다고 해서..우쨋든 엄마는 나름 뿌듯한맘으로 돌아가셧다&lt;br&gt;그시절엔 영원히 내곁을 있을것같던 엄마가&amp;nbsp;&amp;nbsp;떠나고나니..우쨋든 아직 기억이 생생할때&amp;nbsp;&amp;nbsp;울엄마와의 추억들을. 기록해본다..&amp;nbsp;&amp;nbsp;&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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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kakei.tistory.com/2300#entry2300comment</comments>
      <pubDate>Thu, 7 Aug 2025 13:34:4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울엄마가  다섯살에 고아가 되엇던 스토리</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299</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1946년도 12월 제주 애월 고성리 우리집&lt;br&gt;오늘은&amp;nbsp;&amp;nbsp;울집이 잔치집인양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돼지도 잡고 시끌 버쩍하다&lt;br&gt;아버지가. 한라산 반대쪽 동네 서귀포 중문지서로 옮겨 간다고. 아버지와 같이 근무하던 경찰분들하고&lt;br&gt;동네 친척들이 먼동네로 떠나 보낸다고. 환송회라도 하는 모양이엇다&lt;br&gt;그다음날로. 떠나고선&amp;nbsp;&amp;nbsp;아버지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앗다.&amp;nbsp;&amp;nbsp; 한달에 한번정도 올정도 엿다&lt;br&gt;우리동네는 강씨 문씨 양씨 들이모여 사는. 동네인데&lt;br&gt;한두집건네 일가일정도로.&amp;nbsp;&amp;nbsp;친척들도 많앗고&amp;nbsp;&amp;nbsp;할아버지댁은 우리집과 바로 붙어 있엇구&lt;br&gt;외할아버지 댁은. 골목을 나가면 바로엿다&lt;br&gt;마을에는 큰 비석이 있는데. 일제시대 군대에&amp;nbsp;&amp;nbsp;제주에서 몇명뽑여간. ..쟐은 모르겟지만 하여튼 군대가서 전사하신 외삼촌을 기리는 공적비 같은것도. 동네어귀에 있엇고 &lt;br&gt;아버지도 일본에서 학교를 다녓고 해방후 경찰을 햇다고 한다&lt;br&gt;아버지는 서귀포 중문지서에 간 이후로 어쩌다 한번 오면. 그곳은. 고향인 애월 쪽하곤 많이 다르고 텃세도 세서 힘들다는 투의 말들을 잠자리에서 엄마와 나누던것이 얼핏 기억난다&lt;br&gt;&lt;br&gt;중문지서로 간지 몇달 되지 않읏 제주시내에서 열릿 47년도 삼일절기념행사에서. 경찰이 쏜총에. 시민들 대여섯이 죽엇다. 한다..&lt;br&gt;가뜩이나 요즘 동네분들이 경찰을 보는 시선들이 좋지 않은데..&lt;br&gt;. 부락민들이 돌아가며 점심식사를 제공하곤 햇엇는데 총격사건이후론 동네에서 식사도 공급을 끊엇다&lt;br&gt;경찰의 윗사람들은 밀리면 안되니&lt;br&gt;지금사과니 책임자처벌요구를 들어줌 큰일난다며&lt;br&gt;강경한 대응 을 계속 지시해오고 있다&lt;br&gt;일선 현장과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이다&lt;br&gt;&lt;br&gt;3월 13일 제주 시민들은 총파업을 진행코 있으며&lt;br&gt;중문지서 양경한 주임은 본인이 부덕한탓에&lt;br&gt;부락민들의 신임을 잃어서. 그렇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사표를 내겟다고 하는데&lt;br&gt;그러자 다른 순경들도 그게 왜 주임탓이냐 며&lt;br&gt;주임이 그만둠 우리도 함께 그만두는게 맞다며&lt;br&gt;함께 사표를 내엇다&lt;br&gt;사표를 내고 떠나오며 주임이. 부락민들. 보라고 게시글을 남겻는데&lt;br&gt;금일까지 경찰본분을 다하기위해 최선을 다햇으나&lt;br&gt;총격사건으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화하엿다&lt;br&gt;그러므로. 더이상의 악독한 명령은 따를수 없으니&lt;br&gt;금일부로 사표를 내고 중문지서 일동은 경찰을 떠나고저 합니다 란 게시글을 남기고. 각기 고향집으로 떠낫는데&lt;br&gt;그게시글이 왠걸&amp;nbsp;&amp;nbsp;제주도는 물론 육지의&amp;nbsp;&amp;nbsp;주요 신문에도 기사가 실린모양이다&lt;br&gt;애월지서 근무하는 친구가. 난리낫다며&lt;br&gt;빨리 피하라고 지금. 경찰지휘부에선.&amp;nbsp;&amp;nbsp;당장 체포하라고..지금잡히면. 죽을수도 있다고 해서&lt;br&gt;사직할때 경찰복을 보름내 제주본청에 반납하라 햇는데..그럴여절도 없어서 일단 옷은 옆집인 장인집 마당. 고구마굴에 숨겨두엇다. 그러곤&lt;br&gt;일단 집을 떠나. 산쪽으로 들어가 피햇다&lt;br&gt;&lt;br&gt;한라산에 가니..많은이들이 도피하고 있엇는데&lt;br&gt;게중에는 아는 이들도 있멋구&amp;nbsp;&amp;nbsp;어설프게 무장을 하고 있는이도 있엇다&lt;br&gt;우연히&amp;nbsp;&amp;nbsp;같은 동네 아저씨뻘 되는. 분이. 나의 사정을 듣고는.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자고 말을 햇으나&lt;br&gt;시민들에게 총쏘는것이 싫어&amp;nbsp;&amp;nbsp;경찰을 떠나온것인데&lt;br&gt;지금도 경찰중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과 싸우는 일에 동참은 어렵다고 사정이야기를 하니 이해를 해주엇다&lt;br&gt;그곳을 떠나올때 꿩. 한마리를 주기에 대신 집나올때 가져온 고구마&amp;nbsp;&amp;nbsp;몇개로 보답하고 떠나왓다&lt;br&gt;한라산 이곳 저곳을 다니면. 약초나 산나물&lt;br&gt;노루등 나름 먹거리는 있엇고 중간중간에 은신하기 졸은. 굴도 많아. 도피하는데는. 용이햇다&lt;br&gt;&lt;br&gt;몆달뒤에. 밤에 모처럼 집에 갔더니&amp;nbsp;&amp;nbsp;장인이 끌려갓다고 한다. 마당에 숨겨둔 경찰복을&lt;br&gt;내가 경찰을 죽이고. 숨겨둔거라며&lt;br&gt;경찰을 죽이는데 동조햇다고. 체포해 갔다고 한다&lt;br&gt;&lt;br&gt;일이 거잡을수 없게. 커지고 있지만&amp;nbsp;&amp;nbsp;어찌 방법이 없다&lt;br&gt;중문지서의 동료들은 이미 잡혀서.&amp;nbsp;&amp;nbsp;지서양주임님은&lt;br&gt;육지 교도소에 갖혀있다고 하고 한순경은&amp;nbsp;&amp;nbsp;한달넘게 잡혀있다&amp;nbsp;&amp;nbsp;반병신이 된후 풀려낫다고. 하고 다른 동료들은 어찌됫는지..소식을 알수없다&lt;br&gt;들리는 소문에는 양주임은 형제들까지. 빨갱이로 몰아 죽엿다고도 한다&lt;br&gt;&lt;br&gt;문제누 남의 일이 아닌것이다&lt;br&gt;요새들어 경찰들이 가족들이 사는집.을. 자주 감시하고 간다고 하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다&lt;br&gt;&lt;br&gt;48년 9월이 되어. 중간마을 에서. 농사를 짖는 아는 형님네&amp;nbsp;&amp;nbsp;농사일을 거들러 갔다가.. 잠시 바위에 누워 단잠이 들엇는데.. 동녜 꼬마들이 수상하다며 지서에 신고한. 덕에 하계리 지서에 감금되엇다&lt;br&gt;그곳에는 안면있는 경찰도 없엇다. 47년 파업이후 육지에서 많이들. 충원되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맗앗는데. 매우거칠고 폭행과 고문 까지 하며 &lt;br&gt;사직서 져출햇던것이 공산당의. 명령에 따른것 이라는 진술서에. 지장을 찍으라는데 ..&amp;nbsp;&amp;nbsp;잘못 찍음&lt;br&gt;골로 갈수 있기에 버텻다&lt;br&gt;&lt;br&gt;한달여 지서에서. 때리고 해도 말을 듣지 않자 제주검찰에 넘겻고 검찰에선 경찰보단 덜해지만 그곳도 무법천지는 매한가지엿다&lt;br&gt;그곳에서 두세주 있다가. 광주지검에서 재판을 받앗는데. 재판관이&amp;nbsp;&amp;nbsp; 나의 말을드터니 보석석방을 명령핸덕에&amp;nbsp;&amp;nbsp;풀려낫지만&lt;br&gt;여젼히&amp;nbsp;&amp;nbsp;재판은 끝난게 아니니.. 거주지를 떠나지 말라고 경찰이 엄포를 햇으나.. 요즘분위기가 어찌 바뀔지 모르기에 다시 산으로 도망쳣다&lt;br&gt;그러는중에 왠걸 장인집을 수색해 전에 숨겨둔 경찰옷을. 찿아낸후 그걸 갖고 내가 경찰을 죽이고 옷만 땅에 묻은거구 그것을 장인이 다알고 숨긴거라며 장인을 경찰을 끌고가. 죽엿다&lt;br&gt;총살을 당햇다는데..칼로도 찌른 흔적이 있엇다 한다&lt;br&gt;&lt;br&gt;어디까치 걀려고 하는지 모르겟다&lt;br&gt;일본눔들한테 해방되어 나라를 찿앗다 조아라 한게 엊그제 인데..&amp;nbsp;&amp;nbsp;지금. 세상이 미쳐간다&lt;br&gt;일본눔들이 양반이엇던것 같기도 하다&lt;br&gt;들리는 말에는. 구라파에서. 세계대전후에 독일에서 해방된 헝가리 폴란드등 여러나라들이 공산화가 된거루 미군들이 빨갱이 빨짜에도. 소스라 칠정도로 &lt;br&gt;옝신하게 반응하기에..이승만 정부도 미군에 비위에 적극. 협조하는 형국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여부는 잘모르겟다.&amp;nbsp;&amp;nbsp;여하튼 48년 11월. 부터는. 정말 걸리연 죽는. 분위기로 바뀌엇구 장인이 죽고 며칠뒤 아내와&amp;nbsp;&amp;nbsp;아직 돐도 안된 막내아들.그리고. 언니를 도와 조카를 돌보던 처제 까지 잡아가. 죽엿다..&lt;br&gt;큰일이다 이젠 집에는 다섯살 짜리 딸하나와 여덟살짜리 머슴아 둘인데..&amp;nbsp;&amp;nbsp;큰눔은.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졋다고 한다&lt;br&gt;아마&amp;nbsp;&amp;nbsp;갑자기 엄마등 가족들을 잃은 충격때문인듯하다&lt;br&gt;&lt;br&gt;고성리 사람들은 모두&amp;nbsp;&amp;nbsp;아랫마을로 이사 내려 간곳에서. 아이들을 보러 밤에 들려 쪽장을 자고 새벽같이 나오려 하는데. 지서에서 사람이 나왓다&lt;br&gt;아는 사랑 이엇다. 뭐 지서주임이. 다른곳으로 옮겨가게 됫는데 오늘 이 떠나는 날이니. 만나서 지서주임에게 부탁을 함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엇다&lt;br&gt;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갓는데&lt;br&gt;그길로 체포되어 영영. 못나가게됫다&lt;br&gt;&lt;br&gt;남겨진 애들이 걱정이다. ..아버지외 큰형네는 혹시 불똥이 튈까 잔뜩 몸사려 울애들을 보살필것 같지도 않고. 이웃사는 장모는..&amp;nbsp;&amp;nbsp;남편이 죽고 딸들 둘도&amp;nbsp;&amp;nbsp;죽임을 당해서. 제정신이 아닐것이라..&lt;br&gt;&lt;br&gt;지난번처럼 아무일 없이 풀려남 다행인데&lt;br&gt;분위기가 그때와는 천지차이다&lt;br&gt;잠도 잘재우지 않고 먹는것도&amp;nbsp;&amp;nbsp;수시로 주지않는다&lt;br&gt;맞아서 죽어나가는 친구들도 있는듯 하다&lt;br&gt; 언제부턴가. 재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lt;br&gt;그사이. 제주에서 광주로 다시 제주로. 그리고 다시 전주 지검으로 넘겨져 우선 전주형무소에 미결수로 있다&lt;br&gt; 우째 재판이라도 얼려야 하소연이라도 할텬데&lt;br&gt;&lt;br&gt;전주로 온게 50년 1월인데 벌써 &lt;br&gt;6월이다&lt;br&gt;오늘은 간수들이 우왕좌왕하고있다&lt;br&gt;삼팔선어서 전쟁이 일어낫다고 한다&lt;br&gt;그동안&amp;nbsp;&amp;nbsp;자주 부딫혓던 그런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 난거라는거다&lt;br&gt;&lt;br&gt;전쟁상황은. 더욱 나빠지는듯 하다&lt;br&gt;&lt;br&gt;뭔일이 일어나나 보다&lt;br&gt;많은 경찰들이 몰려와 재소자들을 트럭에 태워 보내는데. ..얼마뒤엔 시끄런 총쇼리가 들려온다&lt;br&gt;벌써 3일째인데..오널은 내가 끌려가는 날이다&lt;br&gt;&lt;br&gt;이렇게 중문지서에서 사직서를 제출햇던일 로 &lt;br&gt;빨갱이로. 몰려&amp;nbsp;&amp;nbsp;전가족이 죽임을 당햇던&amp;nbsp;&amp;nbsp;순경&lt;br&gt;강수헌(울엄마의 아버지.)은&amp;nbsp;&amp;nbsp;전주형무소에서. 재소자전원을 사살할때(한국전이 일어나고 북한국이 밀고내려오자 경찰은 후퇴할때&amp;nbsp;&amp;nbsp;전주교도소 재소자&lt;br&gt;전원을 사살햇다고&amp;nbsp;&amp;nbsp;알려지고 있다&lt;br&gt;강수헌은 50년 1월 전주지검으로 송치됫다는 기록이 마지막 생존확인기록이다.. 즉 전주형무소예서 천여명의 재소자전원을 사살시. 포함됫을가능성이 크지만&amp;nbsp;&amp;nbsp;명단들이 남아있지않아&lt;br&gt;정확히 확인되지. 않은체 ..&amp;nbsp;&amp;nbsp;다섯살딸은 자신의 아버지 유골도 끝내 찿지. 못하고. ..제주지법에. 아버지 강수헌에 재판재개를 요청해. 명예회복을 하고자 햇던 노력도. 법원이 자신들이 강수헌에 대한 기록물이 없기에 (&amp;nbsp;&amp;nbsp;분명 검찰기록에는 재판이 진행됫던 사실이 확인됨,보석석방..구소기간연장. 구공판일등명기됨)&amp;nbsp;&amp;nbsp;변론재개를 받아들일수 없다는 &lt;br&gt;아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전화로 거절한다고&amp;nbsp;&amp;nbsp;통보받은날.&amp;nbsp;&amp;nbsp;..그 다섯살 여자아이의.&amp;nbsp;&amp;nbsp;힘겨웟고 슬픈 삶이 끌나버렷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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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12:22: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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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ㄷ도둑누명과 실제 도둑질</title>
      <link>https://kakei.tistory.com/229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담배농사를 지면 일년내&amp;nbsp;&amp;nbsp;농자금이라고. 대출도 해주고 농약 비료등도 대부분 외상으로 지원해준다&lt;br&gt;담배는 어자피 농사가 다끝난후 건조등과 손질등을 다마친후&amp;nbsp;&amp;nbsp;연초조합에. 판매해서. 일년에 한번 목돈이 들어온다. 기억에 80년대초중반 그시절 일년 담배농사로 받는돈이 백 삼사십만원. 정도엿는데&lt;br&gt; 일년동안 빌린돈들을 다갚고 나면. 고작 몇십만원.남앗던것 같다&lt;br&gt;당시엔 천원짜리 백장. 한묶음. 다발로 열세네 다발 갖고 오셧는데.. 어린맘에 그많은 천원다발에서 한장을 뺀들 어찌 알랴..&amp;nbsp;&amp;nbsp;한장을 빼서.. 그돈으로 구판장에가서 과자와 음로등을 잔뜩사서 집이비엇을때 맛나계 먹엇는데&lt;br&gt; 왠걸 어찌된것인지 엄마가 알게되엇구..그일로&amp;nbsp;&amp;nbsp;종아리를 맞앗는데.. 어자피 벌어진것인데 엄마는 가계에 가서&amp;nbsp;&amp;nbsp;돈을 찿아오라나..하여튼 이미 내뱃속을 혜엄치고 있는데 우째 가계에서 돈을 찿아온단 말인가..&amp;nbsp;&amp;nbsp;아마 버릇을 고치시려고 더욱 호되게. 그러셧던것 같다.. 하여튼 참 마니도 맞앗다.. 그시절엔 학교가면 선생님들의 매가 집에선 엄마의 회초리가....&lt;br&gt;그런일이 있고. 언젠가 그날은 단위가 컷다 만원짜리인가 오천원짜리가 없어졋다는것인데&lt;br&gt;범죄가 빌생함.&amp;nbsp;&amp;nbsp;전과자들이 먼저 의심을 받는게 인지상정이듯 그날도 내가. 범인으로 몰렷는데&lt;br&gt;그날은 엄마도 심각하게. 반응하셧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고 걱정하셔서 인지 그날은. 누나 둘과 나를 번갈아 불러. 범인을 찿는데 엄마도 울고 불고 하셧다..하여튼 그날은 쉽게 끝나지 않을 분위기라&lt;br&gt;&amp;nbsp;&amp;nbsp;문제는. 그런와중에. 마당에서 돈이 나왓다&lt;br&gt;그런데 어린 내가 봐도 자연스런것은 아니엇으니 엄마는 더욱 누구짖인지 알고자 햇다&lt;br&gt;그런와중에 누나들은&amp;nbsp;&amp;nbsp;네가 그랫다 해라 그럼 엄마가 크게 혼내지 않을거라며 범인을 나로 몰아가는 분위기엿고 엄마도 내가 그런것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lt;br&gt;나를 호되게 혼을 내려는데 도저히 억울해서..나는&amp;nbsp;&amp;nbsp;끝까지 내가 아니라곤 햇으나...여하튼 그런 상태로 아마 결국 어린 나로 마무리하며 사건은 마무리가 엉성하게 끝나긴 햇으나..그 진짜 범인은 안직도 모른다 커서도. 서로 본인들은 아니라곤 하는데..&lt;br&gt;어쨋든 기존에 지은 죄가 무섭다는걸. 새삼깨달앗엇다....먹구사는게 풍요롭지는 않앗어도&lt;br&gt;좁은집에서 서로 부대끼던. 전우애란게..이번에 엄마가&amp;nbsp;&amp;nbsp;내곁을 떠나면서 엄마와의. 추억과 기억들이 공유하고 있는 누나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lt;br&gt;인생에서 열악한 환경이엇지만. 추억이 많은 시기를 특히나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같이 한다는 차원에서&lt;br&gt;맘은 그런데도 현실에선 누나들에겐 욕심많은 아들 눔으로 보일뿐이지 쉽기도 하다.&amp;nbsp;&amp;nbsp;나름 별거없어도 아들눔이라는. 자리가 거저먹는 자리도 아닌것인데&lt;br&gt;어찌되엇든 회초리를 맞을찌언정 그시절의 엄마를 다시 보고싶지만. 이젠 다시 볼수 없는게 세상이치인것이니 ..우짜고나...&lt;br&gt;&lt;br&gt;&lt;br&gt;&lt;br&gt;&lt;/p&gt;</description>
      <author>각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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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Aug 2025 01:41: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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