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갤러리(휴식처)
그림산책193 청전 이상범(설촌만색)
각계♡
2015. 12. 7. 22:06
청전이상범 1961년신축년 겨울 작 34*34
호는 청전(靑田).
아버지 승원과 어머니 김해김씨 사이에서 3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10세부터 동네 노인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그후 서울 사립 보흥학교를 거쳐
1914년 계산 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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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계의 대가들이 강사진으로 그림을 가르쳤으며
그중에서도 이상범은 안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안중식은 그의 호를 따서 '청년 심전(心田)'이란 뜻으로
청전(靑田)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서화미술원을 졸업한 이상범은
안중식의 화실인 경묵당(慶墨堂)에서 계속
그림수업을 받았다.
이때 창덕궁 내전 벽화 작업에 서화미술원의 동문인
김은호·오일영·이용우·노수현과 함께 참여하여 그중 〈삼선관파 三仙觀波〉를
제작했고 중국 남종화법을 두루 설립하여 화필의 기초를 다졌다.
1921년 제1회 서화협회전에 산수화를 출품하여 입선했으며
제3회 서화협회전에 〈하경산수 夏景山水〉와 〈해진 뒤〉를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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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일본 총독부에서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제1회 때 〈추강귀어 秋江歸漁〉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때의 작품은 남·북종의 화법과 안중식의 영향을 많이 드러냈으나
〈해진 뒤〉와 제2회 선전에 출품한 〈모연 募煙〉 등에서는 중경이 강조되고
현실감이 강화되는 등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다.
1923년 3월 노수현·변관식·이용우 등과 함께
최초의 미술동인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했다.
그러나 동연사는 재정난 등으로 그룹전과 같은 활동은 못하고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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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노수현과 함께
보성학교에서 2인전을 열었으며 선전과 서화협회전에
계속 출품했다.
1926년 〈조선일보〉에 삽화가로 입사했으며
1928년 〈동아일보〉
학예부로 자리를 옮겨 삽화를 그렸다.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일장기를 지운 역할로서 직접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붙잡혀 40여 일 만에 풀려났다.
이후 동아일보사를 그만두고 금강산 등을 여행하며 실경 스케치를 했으며
후진양성기관 '청전화숙'(靑田畵塾) 운영에 전념했다